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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알게 되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나… '쇼트폼 연극'의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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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마감해야 할 원고 작성을 미뤄 두고 머리를 식힌다는 미명 하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쇼트폼(짧은 영상)' 콘텐츠를 눈으로 훑는다. 짧아서 부담 없고 한없이 가볍고 재밌는 영상을 화면을 스크롤하며 하나둘 보다 보면 1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원고는 언제 쓰지! 쇼트폼 콘텐츠는 현대인의 취향과 사고 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짧고 빠르게 새로운 이야기로 전환되는 쇼트폼 콘텐츠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연극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연극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쇼트폼 콘텐츠 방식을 연극에 적용한 작품이다. 70여 개의 서로 다른 형식과 스타일의 에피소드가 90여 분 동안 배우 다섯 명의 연기로 펼쳐진다.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비밀이 있는 친구 A와 그것을 알아내고 싶은 친구 B의 이야기가 첫 에피소드다. A의 비밀을 알고 싶은 B는 설득, 회유, 사정을 해보지만 마음을 굳게 먹은 A는 모든 시도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A의 태도에 B는 실망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A는 그런 B를 보며 마음이 약해져 비밀을 말해 준다. 눈이 커지는 B, 그리고 둘은 "정말?, 대박!, 정말 그랬다니까, 그래서?" 등의 말을 이어가며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난다.
첫 에피소드는 연극 '러브 앤 인포메이션'이 주목하는 소재를 소개한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드러내듯 현대사회에서 무수히 생산되고 그중 일부는 그 자체로 권력이 되기도 하는 '정보'에 주목한다. 정보를 소유한 A와 그것을 알고 싶은 B는 정보를 공유했지만 관객들은 정보에서 소외된 채 끝난다. 관객은 그들의 비밀을 끝내 알지 못하고 반응을 통해 상상할 뿐이다. 첫 에피소드는 비밀의 내용이 아니라 비밀을 소유한 등장인물과 소외된 관객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긴장 관계를 드러낸다.
이후 이어지는 70여 개의 에피소드는 정보에 대해 다양한 생각 거리를 던져 준다. 친구 애인의 외도를 의심하는 또 다른 친구는 "고심한 끝에 말하는 건데"라는 말과는 사뭇 다르게 친구 애인에 대한 의심을 당사자 친구에게 너무나 가볍게 전한다. 그러나 당사자 친구는 이미 그 사실을 3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 사실을 무겁게 간직하고 있었다. 평생 언니로 알았던 존재가 사실 엄마였다고 고백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절대 말해선 안 되는 사실(정보)을 십여 년간 천형처럼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제 그 천형은 딸에게 전달됐다. 딸은 그 무거운 진실(정보)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할까, 아니면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견디며 살아야 할까.
신의 말씀을 들었다고 고백하는 친구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의 에피소드를 비롯해 극의 중반부에 이르게 되면, 정보의 독점과 공유 문제를 넘어 정보의 이해와 공감을 이야기하는 차원으로 넘어간다. 신의 말씀을 들었다는 말에 친구는 '목소리나 말투가 어땠냐’며 순수한 호기심을 드러낸다. 정보를 공유해도 자신의 상상력 안에서만 수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친구는 결코 신의 말씀을 들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가상 인물과 사랑에 빠진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 역시 정보(가상 인물)에 대한 이해와 태도의 차이로 이해에 닿지 못한다.
중·후반부에서는 변형되는 정보로서 기억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정보는 고정된 진리처럼 여겨지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 소장한 기억(정보)은 주관적으로 왜곡된 상태로 저장된다. 오랜만에 만난 헤어진 연인 에피소드에서 둘은 과거의 추억을 꺼내 놓지만 서로의 기억이 다르다. 동일한 추억 속에서 한 사람은 장소만을, 다른 사람은 장소의 주인만을 기억한다. 화상으로 인해 뜨겁게 각인된 화인이 아니고서는 두 사람이 공통으로 기억하는 것이 없다.
후반부 에피소드는 정보의 교환이 불통된 상태의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두 개의 상황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의도적으로 소통이 방해되고, 그러한 방해가 없더라도 말이 명확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에게 고통을 설명하는 에피소드에서는 그가 느끼는 심정적 고통으로 육체적 고통을 비유한다. '빨강'에 대한 다양한 상징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는 당사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 스스로도 모르는 듯 말이 겉돈다. 현대사회에 쏟아지는 무수한 정보, 그 정보의 차이로 인한 이해와 오해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정보를 공유한다고 해도 각자의 이해와 해석이 달라 진정한 공감에 이르는 길은 멀기만 하다.
연극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정보에 대한 소유의 문제에서 공감을 통한 진정한 공유, 어쩌면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야기를 유쾌한 에피소드들로 제시한다. 공연은 11월 4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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