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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만 잘하는 사람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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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셋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낸 선아씨는 54세에 기억을 잃기 시작했다. 초로기 치매(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였다. 선아씨가 혼자 할 수 있는 건 젓가락질밖에 없을 정도로 기억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아이들 이름이랑 얼굴을 헷갈리더니 이제는 본인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 선아씨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건 남편뿐이다.
남편은 1년 365일 한순간도 아내와 떨어지지 않는다. 부부는 서울 미아동 일대를 매일 15㎞ 이상 2만5,000보씩 밤낮없이 걷는다. 아내에게 헌신하려 직장까지 그만둔 남편의 지극정성 덕일까. 선아씨는 폭력성도 줄고 배회 증상도 많이 호전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한국일보에 소개된 ‘미아동 잉꼬부부’ 얘기는 미담이지만 가슴 아픈 사연에 더 가깝다. 남편은 왜 저토록 아내에게 헌신하는 걸까. 칭찬받고 싶어서도 아니고, 금전적으로 이득 되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아내는 남이 아니고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였다.
미아동 부부의 사연을 접할 무렵, 지인의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그는 남편 험담을 쏟아내며 하소연했다. “남편이요? 남들 앞에선 감정 표현 절제하고 매너 있게 행동하는데, 가족에게는 너무 함부로 대해요.” 밖에선 대인관계 좋다고 호평을 받지만, 배우자를 대하는 모습만 보면 전혀 다른 사람 같다는 얘기였다.
지인 부부를 동작동 잉꼬부부로 알고 있었는데, 속사정을 들어보니 상황은 심각했다. 남편은 아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괜한 트집을 잡아 화를 내고 말도 안 되는 기준을 들이대며 목소리를 높인다고 했다. 말투나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맥락도 없이 나무라다가 분에 못 이겨 입을 다물어 버린다고도 했다.
가족 모임을 하다 보면 이런 이중적인 사람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남에게는 욕 안 먹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면서, 가족은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람들 말이다. 일본의 심리학자 가토 다이조는 과도하게 남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두고 버림받지 않기 위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반대로 가족에게는 버림받을 일이 없다고 보고, 도를 넘는 언행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부부 관계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국가 지도자도 안과 밖을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달라질 때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처음 사용한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말은 이후 대통령의 나라 사랑을 드러내는 상징적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반도 밖에서만 매너 좋다는 얘기를 들으려 노력하고, 정작 국민들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대통령이 적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런 평가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백악관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어깨동무를 하며 환호했다. 3월에는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회동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호를 다졌다. 이들을 대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은 국민들을 존중한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여당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도 따지고 보면 무시당하고 있다는 유권자의 분노가 반영된 결과다.
대통령이 대한민국과 결혼한 게 틀림없다면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부터 확 바꿔야 한다. 미아동 남편처럼 헌신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동작동 남편처럼 돼서는 안 된다. 가족이라고 안심했다가 이혼당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함부로 대하면 버림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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