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신곡 티저 아니라 '티저 시집'도 있다… 200호 돌파한 문학동네시인선

입력
2023.10.19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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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의 가장 모험적인 가능성 발굴"
내걸고 2011년 시작한 문학동네시인선
100호 당시 호응 얻은 '티저 시집' 다시
향후 출간할 시인 50명의 신작 시들 모아
그간 '시인의 말'만 담은 모음집도 발간

문학동네시인선이 200번째 시집을 맞아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를 펴냈다. 앞으로 시집을 낼 예정인 시인 50명의 신작 시 한 편씩과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시인들의 대답 한 문장을 함께 담았다. 문학동네 제공

문학동네시인선이 200번째 시집을 맞아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를 펴냈다. 앞으로 시집을 낼 예정인 시인 50명의 신작 시 한 편씩과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시인들의 대답 한 문장을 함께 담았다. 문학동네 제공

신곡 발표 전 티저(예고편 형태의 짧은 광고) 공개는 아이돌 마케팅의 정석이다. 30초도 안 되는 영상이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하며 팬들의 관심을 모으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그런 공식이 문학계에서도 통할까.

국내 대표 시집 시리즈물인 문학동네시인선이 200호 출간을 기념해 일명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를 펴냈다. 앞으로 시인선을 낼 시인들의 신작 시 각 한 편씩을 미리보기처럼 엮었다. 안도현, 전동균 등 시력 40년이 넘는 중견 시인은 물론 이예진, 이진우 등 올해 갓 등단한 신인, 그리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연준, 안희연, 이훤, 임솔아, 정한아 등 총 50명의 시인을 만날 수 있다. 출간 일주일 사이 이미 중쇄(1만 부)를 찍은 티저(시집)의 초반 판매고는 호성적이다.

티저 시집은 2017년 첫선을 보였다. 문학동네시인선이 100번째 시집으로 티저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를 냈고, 당시 출간하기도 전에 2쇄를 찍어 화제가 됐다. 발표된 대표작을 묶는 기념호의 통상적 형식에서 벗어난 시도가 통한 셈이다. 현재까지 약 4만 부가 팔렸다.

이런 방식은 신인에게 문턱을 낮춘 문학동네시인선의 기조와도 맞아떨어진다. 시인선은 중견과 신인을 아우르는 "당대 한국시의 가장 모험적인 가능성들을 적극 발굴"하겠다는 포부로 2011년 첫발을 뗐다. 특히 신인들의 첫 시집에 공을 들였다. 199번째까지 문학동네시인선을 통해 첫 시집을 낸 시인(45명)이 전체 시집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대표 사례로 박준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출간 10년째인 올해 초 60쇄, 20만 부 제작이라는 놀랄 만한 기록을 세웠다.

문학동네시인선을 기획하고 지금까지 이끌어 온 김민정 시인(출판사 난다 대표)은 "신인 시인이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첫 시집을 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면서 "티저 시집을 통해 시인들에게는 책임감을, 독자에게는 그들을 기다리는 설렘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미래를 함께 열어가 보자"는 취지다. 곧 출간되는 201·202·203번째 문학동네시인선 역시 이번 티저에 참여한 한여진, 고선경, 임유영 시인의 첫 시집들이다.

문학동네시인선은 200호 출간을 기념해 첫 번째 시집부터 119번째 시집까지 '시인의 말'을 묶은 한정판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을 출간했다.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의미를 담아 가격(3,000원)도 원가 수준으로 책정했다. 문학동네 제공

문학동네시인선은 200호 출간을 기념해 첫 번째 시집부터 119번째 시집까지 '시인의 말'을 묶은 한정판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을 출간했다.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의미를 담아 가격(3,000원)도 원가 수준으로 책정했다. 문학동네 제공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 시인들의 답변도 담았다. (100호 티저에는 산문을 한 편씩 실었다.) "머물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집을 짓는 것"(김연덕), "작아지지 않는 슬픔, 그게 좋아서 첨벙첨벙 덤비는 일"(박연준), "소음 속에서 침묵하는 존재들이 나누는 손짓"(조온윤), "이상적으로 망가진 세계"(김이듬) 등 한 문장으로 쓴 시인들의 생각을 읽다 보면 또 다른 시 세계를 만나는 듯하다.

문학동네는 시인선 200호 기념 한정판 도서를 한 권 더 출간했다. 1~199호 '시인의 말'을 모은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이다. 시집 맨 마지막에 쓰이지만, 맨 앞에 놓이는 '시인의 말'은 시인과 독자가 처음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직은 뛰고 있는 차가운 심장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허수경), "우린 너무 아름다워서 꼭 껴안고 살아가야 해"(박상수), "마음이 기우는 대로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보면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 곁이었다. 시는 영원히 그런 존재들의 편이다"(나희덕) 등 저마다의 스타일로 써 내려간 '시인의 말'을 시집 제목과 함께 읽는 것만으로도 시 본문과는 또 다른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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