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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3.10.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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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류 과잉 처방 의사들, 법령 미비에 처벌 비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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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20년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다고 소문났던 서울 성북구 소재 의원 건물의 외부 모습. 이한호 기자

2020년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다고 소문났던 서울 성북구 소재 의원 건물의 외부 모습. 이한호 기자

필로폰과 같은 마약을 밀수해서 유통하는 사람만 ‘마약상’인 건 아니다. 버젓이 병원을 열고, 흰 가운을 입고, 의사면허를 가진 ‘마약상’도 있다. 단 한 번 흡입만으로 중독되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이 국내에 퍼졌던 것도 이런 ‘의사 마약상들’ 때문이었다.

□ 멀쩡히 걸어 들어가 “허리가 아프다”고 몇 마디 하면 펜타닐을 처방해준 서울 성북구 S의원. 중독자들에게 ‘펜타닐의 성지’로 불렸던 곳이다. 말기암 환자 등 거동을 못 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 환자에게만 미량 처방하는 펜타닐 패치가 이곳에선 2019년 4,220매, 2020년엔 6,108매 처방됐다. 의심의 눈초리가 커지자 지금은 펜타닐 대신 식욕억제제에 들어가는 마약류 펜터민을 처방한다. 지난해 3,184정을 처방했다.

□ 의사 마약상들이 뻔뻔할 수 있는 이유는 거의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의 ‘처방권’은 강력하다. 처방권이라는 방패 때문에 의료용 마약의 업무 외 목적 불법유통을 증명하기 쉽지 않다. 올해 6월 중독자 한 명에게 펜타닐 패치 4,825장을 처방해 준 의사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수년간 펜타닐 중독 문제가 큰 쟁점이었는데도 의사 구속은 처음이었다. 한 명에게 4만538명의 목숨을 앗아갈 양을 처방할 정도로 혐의가 명확했던 이유가 컸다. 펜타닐 1인 치사량은 0.002g이다.

□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도 마약류 과잉 처방 의원 등 15곳을 수사 의뢰했다. 지난해 식욕억제제 등 마약류 2,216만 개를 처방한 대구지역 의원 등이 포함됐다. 식약처의 수사 의뢰에도 절반 가까이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고 한다. 기소돼도 벌금형이 많다. 처벌이 쉽지 않은 탓에 수사 중에도 처방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행정처분도 부실하긴 마찬가지. S의원은 마약류 관리 위반으로 업무정지 13개월 통지를 받았는데 과징금 1,170만 원을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하루 3만 원씩만 내고 영업을 계속한다. 이런 제도들을 방관하는 동안, 가운 입은 마약상들은 곳곳에서 사람 잡는 돈벌이를 하고 있다.

이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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