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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생존 걸린 '탄소 무역장벽'…공장 지붕 빌려주는 '태양광 렌털' 뜬다 [갈 길 먼 RE100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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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동전일반산업단지(동전산단)에는 6월 '특별한 기관'이 문을 열었다.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관리하는 경남창원그린에너지센터다. 이곳은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짓고 관리하는 창원국가산업단지의 프로젝트에서 허브 역할을 한다.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산단 입주기업들이 전력 일부를 직접 만들어 쓰는 '에너지 자급자족 사업'을 시작했고 창원산단이 1호로 뽑혔다. 권정일 센터장은 20일 "입주 기업들의 공장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놓고 재생에너지 공급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자급자족 사업이라지만 입주 기업이 직접 태양광 발전 시설을 관리하진 않는다. 지붕을 전문 업체 SK에코플랜트에 빌려주고 이 업체가 2메가와트(MW) 규모의 태양광 패널로 만든 전력을 4개 기업에 공급한다. 이는 SK에코플랜트와 산단 입주기업이 직접 전력거래계약을 맺은 직접 PPA1 계약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기업들은 보통 킬로와트시(kWh) 당 200원가량인 재생에너지 전력을 140원대에 싸게 살 수 있다.
공장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까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RE100 이니셔티브2 를 비롯해 탄소 감축을 화두로 한 새로운 환경 질서가 만들어지고 이를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수출 길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KDI 공공정책대학원 등이 2021년 'RE100이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 봤더니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RE100에 참여하지 않으면 2040년 기준 반도체 수출액이 31%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내 대기업들에 RE100 컨설팅을 해 온 A씨는 "2, 3년 전부터 지붕형 태양광을 직접 챙길지 전문 업체에 맡길지 고민하던 대기업들은 실행에 나섰다"며 "올 들어 중견기업들로부터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 중소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구 스마트산단에서 태양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홍태화 SRS(주) 대표는 "산단에서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의 20%는 중견·중소기업이 활용한다"며 "주로 RE100에 가입한 국내외 대기업의 협력업체들"이라고 전했다. RE100 가입사들이 자신들의 협력업체에 재생에너지를 쓰도록 요청해 조금이라도 싼 재생에너지를 찾는 게 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
A씨는 "애플, BMW, 볼보 등 글로벌 기업들은 현장 실사도 나오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일본 도레이와 독일 기업들을 주요 고객으로 둔 수도권의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1월 독일에서 '공급망 실사법'3이 통과하면서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늘려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올해 말 유럽연합(EU)의 공급망실사지침 최종안이 나오면 이런 요구는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정부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기업들끼리 사고팔 수 있게 한 '직접 PPA'를 도입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RE100 대처 방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발전업체 GS EPS는 LG전자로부터 경남 창원시 LG스마트파크 지붕을 빌려 태양광 전력을 만든 뒤 LG전자에 다시 판다. 이전까지 네이버 등 사옥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단 기업들은 직접 챙겼다. LG전자 관계자는 "전장(자동차 전자장치·電裝) 사업본부(VS)가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썼는지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정수기처럼 태양광 시설을 빌려 쓸 수 있게 되면서 지붕에 다는 태양광 패널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아모레퍼시픽, SK스페셜티, LG이노텍, 현대모비스, GC녹십자, 한국바스프 등 재생에너지 전력을 쓰겠다고 발표한 기업 모두 직접 PPA를 택했다. 한국전력거래소가 지난해 12월 RE100과 관계 있는 164개 기업에 물었더니 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재생에너지 사용 수단이 직접 PPA(27.4%)였다.
전기료 폭등이 기업들의 PPA 수요를 더 늘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1년 사이 전기요금이 40% 가까이 오르면서 PPA 요금이 일반 산업용 전기요금과 비슷하거나 더 싸진 역전 현상도 일어났다. 직접 PPA 계약 단가는 kWh당 140~150원으로 알려졌는데 올 겨울 산업용 전기요금은 추가 인상이 없을 경우 kWh당 최대 부하 기준 186~204원(산업용전력 '을')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계속 올라 우리 회사의 직접 PPA 금액이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싸다"며 "전기료를 (태양광 패널 설치 전보다) 매달 아끼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산단들도 나섰다. 대구시는 지난해 12월 한화자산운용(주) 등과 대구 스마트 산단 지붕형 태양광 프로젝트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대구시 내 산단 지붕과 남는 땅에 최대 3조 원 규모의 민간 자본을 들여 1.5기가와트(G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을 놓고 발전사나 산단 입주 기업에 판다는 내용이다. 경기도는 7월 8개 민간 태양광 발전 사업자로 컨소시엄을 꾸렸다. 역시 발전 사업자가 4조 원을 투입해 경기도 내 50개 산단의 공장 지붕과 남는 땅 등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2.8GW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아직 갈 길은 멀다. PPA는 20년 이상 운영해야 수익을 내는데 현행법으로는 공장 소유주가 바뀌면 설비 유지를 강제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기준 국가산단의 연간 태양광 전력 생산량은 자체 전력 소비량의 1%도 안 된다. 그러자 대구시는 신규 입주 기업이 태양광 발전소를 넘겨받을 수 있게 산단 관리 기본 계획을 만들었다.
최근 들어 위축된 태양광 사업 투자와 높은 금리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보다 원전 생태계 회복을 강조하고 있는 데다가 고금리 기조로 인해 태양광 투자시장은 침체된 상태다. 홍태화 대표는 "대규모 태양광 설비 설치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고시하는 태양광 전력 장기계약 입찰 상한가가 해마다 떨어지고 있어 PF를 모으기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직접 PPA 가격은 에너지공단의 태양광 장기 계약 입찰 상한가보다 낮게 마련인데 kWh당 △2019년 180.6원 △2020년 172.5원 △2021년 161.6원 △2022년 160.6원 △올해 153.5원으로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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