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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한여름 산들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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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vate, or Die’
‘혁신하라, 아니면 죽는다’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한국일보 디지털 혁신을 위한 제언’ 보고서가 나온 건 2014년 1월이었다. 한국일보 노동조합과 취재ㆍ편집ㆍ사진부 기자들이 중심이 돼 이 보고서를 낸 시점은 사주였던 장재구 전 회장을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해 구속시키고, 회사는 법정관리 회생 절차를 밟아가는 혼란기 와중이었다.
당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종이신문 퇴조 속 디지털 플랫폼별 뉴스 공급 전략 △디지털 뉴스 콘텐츠 다변화 △디지털 맞춤형 시스템ㆍ조직 혁신. 과연 내일은 신문을 찍어낼 수 있을지, 월급이나 제대로 나올지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던 시간이었지만 미래 혁신을 향한 꿈은 그나마 우리를 버티게 했던 힘이었다.
한국일보는 다행히 2014년 9월 새롭고 건실한 인수자를 찾았다. 인수를 전후해 한국일보닷컴을 새로 만들었고 ‘클릭, 클린! 반칙 없는 뉴스’, ‘세상을 보는 균형’ 등의 모토와 실천 덕분에 신뢰받는 언론사, 디지털을 잘 실천하는 언론사로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언론사가 그렇듯, 혁신의 앞길은 평탄치만은 않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도 한국일보와 유사한 운명을 겪었다. 1877년 창간 후 리처드 닉슨 대통령 퇴진을 끌어낸 워터게이트 특종 등으로 명성을 쌓았던 WP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13년 아마존닷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에게 매각됐다.
베이조스의 막대한 투자와 혁신 노력으로 되살아나는 듯했던 WP는 지난해 다시 위기에 빠졌다. 경쟁지 뉴욕타임스(NYT)가 2014년 혁신 보고서를 내놓고 디지털 전환에 힘을 실으면서 디지털 전용 구독자만 880만 명을 모으고 승승장구하는 데 비해 WP의 고전은 심상치 않았다. WP의 디지털 유료 구독자는 2020년 말 300만 명 육박 후 최근 250만 명까지 떨어졌다. 새로운 콘텐츠 영역 발굴 실패, 보여주기식 조직 운영이 고전 요인으로 꼽혔다.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는 혁신의 사전적 의미를 제대로 실천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과제다. 특히 당대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함이나, 혁신의 목적과 원칙 상실이 실패의 핵심 요인일 것이다.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은 태풍처럼 몰아쳐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작 조직을 바꾸고 성공시키는 작업은 한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초기 기독교 교회를 성장시켰던 베드로의 비결로 한여름 산들바람 같았던 겸손을 꼽듯, 혁신은 태풍과 같은 단기간의 강력함보다는 오래 이어지는 산들바람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우선이다.
여기에 업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언론사의 혁신 역시 저널리즘 원칙을 되새기는 데서 출발한다. 최근 재개된 WP의 혁신은 베이조스의 조직 정비 결단, 뉴스룸 사기 진작, 고품격 저널리즘 공급, 퓰리처상 수상 등의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NYT의 평가다.
자랑스러운 BTS와 걸그룹 뉴진스 등이 속해 있는 하이브의 철학은 ‘We believe in Music(우리는 음악을 믿는다)’이다. 음악에서 출발한 회사인 만큼 사업의 본질인 음악을 기본으로 하되 기술을 접목하고 플랫폼을 넓혀가며 시가총액 10조 원의 성공 가도로 접어들었다. WP의 고전, 하이브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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