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엔 쿠팡 상자… 택배노동자 '새벽 배송' 도중 사망

쿠팡 물류 전문 자회사 CLS 간접 고용
CLS 실태조사 결과 평균 주 5.9일 근무
택배노조 "과로사 맞다면 예견된 참사"

경기 부천시 쿠팡 물류센터에서 '로켓배송'이 적힌 배송차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쿠팡 위탁업체 소속의 60대 배달노동자가 13일 새벽 배송 업무를 하다가 숨졌다. 택배노조는 "고인의 죽음이 과로사가 아닌지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와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44분 경기 군포시 빌라 복도에서 쿠팡 퀵플렉스 배송노동자 A(60)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호흡하지 않는 사람이 대문 앞에 쓰러져 있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A씨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결국 사망했다. A씨가 발견됐을 당시 머리맡에는 쿠팡 종이박스와 쿠팡 프레시백 등 택배상자 3개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쿠팡 퀵플렉스 배송노동자는 쿠팡의 물류 전문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CLS)와 계약을 맺는 대리점 소속으로,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쿠팡에서 고객이 주문한 물품을 배달하지만, 쿠팡 본사나 CLS에 직고용된 것이 아니라 대리점을 매개로 간접고용된 것이다.

택배노조는 이날 오후 국회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이 추정대로 과로사로 판명된다면 이는 예견된 참사"라면서 "연 365일 가동하고, 낮이건 밤이건 새벽이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명절에도 정상근무해야 하는 쿠팡의 배송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5일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이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주 80시간 살인적 노동 강요 불법 갑질계약서 대리점·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노조는 "쿠팡에서 근로기준법 적용으로 주 52시간 제한을 받는 정규직 '쿠팡친구'를, 무제한 노동시간을 강요할 수 있는 특수고용직 쿠팡CLS 위수탁 기사로 대체한 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쿠팡에 직고용됐던 쿠팡친구는 동일한 근로조건으로 올해 초부터 자회사(CLS) 직원으로 전환이 됐지만, 퀵플렉스 배송노동자는 개인사업자(특고) 신분이라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다.

서비스연맹이 4월 발표한 'CLS 노동자 노동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9.7시간, 주 5.9일을 일해 상시적 과로에 시달렸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다는 답변도 31.4%였고, 식사나 휴게시간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42.8%였다. 택배노조는 12일부터 쿠팡 측 대표를 국토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러달라며 국회 앞에서 100시간 철야 농성에 돌입했다.

진성준 의원은 "'새벽 배송은 택배노동자 업무를 더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라면서 "CLS가 안전 지침 등을 충분히 지켜왔는지 국감에서 확인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할 것이며,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쿠팡 측은 "고인은 쿠팡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이고, 현재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