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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칼부림 영상이 만든 사회적 패닉

입력
2023.10.14 00:00
19면
9월 12일 오후 11시 여성 안심 귀가 스카우트 대원들이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민인 한 20대 여성의 귀갓길에 동행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9월 12일 오후 11시 여성 안심 귀가 스카우트 대원들이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민인 한 20대 여성의 귀갓길에 동행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현대사회는 위험한가? 아니, 인간의 역사와 위험은 언제나 함께해 왔으니 다시 질문해 보자. 현대사회는 예전에 비해 더 위험한가?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왜 요즘 들어 더 크고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인류는 부족한 자원과 엄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과 욕심이 더해져서 ‘위험 감수는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도박이나 투기 심리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심지어 인류는 더 큰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위험에 노출하기도 한다. 이렇듯 위험은 자발적인 의지가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 교통사고나 방사능 유출과 같은 기술적 위험 등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한다. 자발적 위험이건 비자발적 위험이건 인간은 여전히 위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나 비슷한 형태로 존재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각은 대상이나 사건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판단을 말한다. 그렇다면 위험 지각은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판단을 의미하며, 위험한 행동이나 위험한 상황에 대한 이익과 손실을 평가·분석하는 행위다. 결국 현대인들이 과거에 비해 세상이 더 위험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더 많은 위험을 지각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의 위험과 관련한 담론들은 방송과 신문 등에서 거의 매일 무차별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일반인들로 하여금 온갖 위험에 둘러싸여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과민 반응을 확대 재생산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주목되는 현상은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가 상호작용하여 위험 지각을 강화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올여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신림동 칼부림 사건’이 7월 21일에 일어났고, 범행 당시의 동영상들이 거의 동시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됐다. 그다음 날부터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테러 및 칼부림 예고 글들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8월 3일에는 서현역 부근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고, 이보다 앞선 6월에는 부산 성폭행 살인미수 사건과 관련된 동영상들이 유포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은 우리 사회를 매우 위험하다고 지각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개인용 보호 장비를 앞다퉈 구입하기도 했다. 위험한 상황을 동영상을 통해 접하고 ‘이런 위험이 나에게도 미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드는 순간 강력한 위험 지각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범행 당시의 동영상들이 그렇게 전파되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위험 지각이 그만큼 강력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말이나 글로 위험한 상황을 설명하는 것보다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고 자극적이다. 이런 동영상 중에는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모방 심리를 자극하기도 한다. 신림동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의 영상이 그렇게 빠르게 전파되지 않았다면 후속 사건이 발생하지도, 우리 사회가 그렇게 패닉에 빠져들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비록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방송과 소셜미디어에서 이러한 동영상을 제공할 때는 좀 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김옥태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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