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뇌가 맡는다

입력
2023.10.12 15: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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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코에서 뇌로 가는 화학신호
민원 쌓여가는데 객관화 쉽지 않아
후각 특성 이해하고 공감도 높여야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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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식품기업의 공장이 있다. 예전에 주민들은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특정 식품의 냄새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역한 냄새는 아니었지만, 매일 시도 때도 없이 풍겨온 탓에 줄줄이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기업은 ‘폭탄 민원’ 대상이 된 식품의 생산설비를 지방으로 옮겼다. 그 뒤에 이사 온 우리 집은 냄새 때문에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됐다.

주민들을 괴롭힌 그 식품은 누구나 좋아할 만한 향이 난다. 하지만 가끔 먹고 싶을 때 맡는 것과 창문 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는 건 다른 얘기다. 좋은 냄새도 매일 맡는 건 고역일 수 있다. 식당에 들어갈 땐 그렇게 반가운 고기 냄새가 지하철에서 옆자리 앉은 사람이 풍기면 불쾌하기 짝이 없다. 흙냄새가 캠핑할 때는 낭만적인데, 수돗물에서 날 땐 불안해진다. 같은 냄새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것이다.

냄새를 맡는 건 코지만, 인지하는 건 뇌다. 냄새 물질이 코로 들어온 뒤 뇌가 인지하기까지는 꽤나 많은 단계를 거친다. 그 과정에서 코 점막에 있는 단백질인 후각수용체가 핵심 역할을 한다. 냄새 물질이 후각수용체에 달라붙으면 마치 스위치가 켜진 듯 화학 신호들이 도미노처럼 잇따라 발생하고, 이 신호들이 신경망을 거쳐 뇌의 후각 담당 영역에 전달돼야 냄새를 알아차린다.

후각수용체를 만드는 후각유전자는 놀랍게도 1,000개가 넘는다.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후각수용체를 만드는데, 그중 실제로 냄새 맡는 데 기여하는 후각수용체는 400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후각수용체마다 결합하는 냄새 물질의 구조가 다르고, 어떤 후각수용체는 여러 물질과 결합하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인간은 수많은 냄새를 구별하고 기억한다. 후각유전자를 발견하고 후각 메커니즘을 밝혀낸 과학자들은 200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후 후각수용체 유전자가 코에만 있지 않다는 흥미로운 연구도 나왔다. 간이나 근육, 심지어 고환에도 있다고 한다. 후각수용체 분포만 보면 거의 온몸으로 냄새를 맡아도 될 수준이다. 그렇게 못 하는 이유는 코 아닌 다른 곳에 있는 후각수용체는 냄새와 관련 없는 다른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맡는 냄새에는 대개 여러 물질이 섞여 있다. 그중 어떤 물질이, 얼마나 많이 후각수용체에 달라붙는지, 그렇게 생긴 신호가 뇌에 어느 정도로 전달되는지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에게선 기능이 활발한 후각수용체가 다른 이의 코에선 별로 일을 안 할 수 있다. 후각유전자에 변이가 생기기도 하고, 냄새 신호가 뇌에 전달되면서 특정 장면이 함께 기억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같은 냄새라도 누군 견딜 만하고, 누군 못 살겠다고 느낀다.

한국일보가 전국 악취 민원 데이터 5년 6개월치를 전수 분석해 보도한 기획시리즈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에 대한 독자들 반응이 뜨거웠다. 매일 하루 평균 60여 건씩 민원이 쏟아지고 소송까지 난무하는 현실에, 특히 냄새 때문에 괴로웠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공감했다.

감각을 객관화, 수치화하기란 쉽지 않다. 물리적 감각으로 분류되는 시각, 청각보다 화학적 감각에 가까운 후각은 더 어렵다. 하물며 개인차까지 더해지니 모두가 수긍할 만한 해결책이 나오기 힘들다. 냄새를 측정하고 줄이는 기술이 없는 게 아니다. 악취방지법을 만든 지도 20년이 돼간다. 후각의 특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더한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아수라장으로 남진 않을 것이다.

임소형 미래기술탐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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