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비판했다고... ‘취업 블랙리스트’에 하버드생들 올리는 유대인 자본

입력
2023.10.12 16:30
수정
2023.10.12 16:3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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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거물 애크먼, “고용 말자” 선동
뉴욕대 로스쿨생은 로펌 채용 취소 통보
'이스라엘 비판' 철회하는 학생들 잇따라
“철부지 영구 처벌은 과잉 반응” 자제론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이 2017년 5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로이터 연합뉴스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이 2017년 5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자본 권력의 핵심부에는 유대인이 많다. 헤지펀드계 거물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도 그중 하나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자비한 공격엔 이스라엘 책임도 크다는 의견을 그는 용납할 수 없었다. “테러분자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놓고 기업의 방패 뒤에 숨을 수 있어선 안 된다”며 모교인 미국 하버드대에 성명 참여자 명단 공개를 요구한 배경이다.

'이스라엘 비판' 대학생들, '블랙리스트' 등재 위기

11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무심코 고용하는” 일을 막고 싶다며 전날 애크먼 회장이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은 기업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쇼핑 플랫폼 ‘팹핏펀’과 건강 기술 스타트업 ‘이지헬스’, 호텔 산업 투자·개발 회사 ‘도브힐 캐피털 매니지먼트’ 등의 최고경영자(CEO)가 사실상 ‘하버드대생 블랙리스트’를 만들자는 그의 선동에 호응했다.

이스라엘 책임론을 제기했다가 채용에서 탈락한 사례도 나왔다. 뉴욕대 로스쿨 학생회장인 리나 워크먼은 “엄청난 인명 손실의 책임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에 있다”는 규탄 성명을 낸 뒤, 다 잡았던 일자리를 놓쳤다. 입사를 제안했던 로펌이 “회사의 가치와 당신의 의견이 심각하게 충돌한다”며 그에게 채용 취소를 통보한 것이다.

취업 제한·학내 질타 등 거센 후폭풍

취업의 좁은 문 앞에선 장사가 없었다. 이날 하버드대 대학 신문인 ‘하버드크림슨’은 문제의 성명에 서명했던 34개 하버드대 학생 단체 중 최소 5곳이 지지 입장을 철회했다고 전했다. 하버드 학부 네팔 학생회는 “연명 결정이 최근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폭력적 공격에 대한 암묵적 지지로 해석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민자 지원단체인 ‘액트 온 어 드림’은 “우리 단체가 성명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구성원들이 몰랐다”고 해명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하버드대 캠퍼스 입구. 케임브리지=AP 연합뉴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하버드대 캠퍼스 입구. 케임브리지=AP 연합뉴스

학내 질타와 ‘신상 털기’도 위축 요인이 됐다. 하버드대 17개 학생 모임은 교직원 500여 명과의 공동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 비판 성명은 완전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크림슨은 “최소 4개의 온라인 사이트에 이스라엘 비판 성명에 서명한 단체 소속 학생들의 이름과 수업 연도, 소셜미디어 프로필, 사진 등이 노출됐다”고 알렸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건 역시 블랙리스트 등재에 따른 공개 낙인이다. CNN방송은 11일 “이름 특정이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학생 단체 내 의견 차이가 간과됐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지난 9일 이스라엘 규탄 성명을 “도덕적으로 비양심적”이라고 비판해 주목을 받았던 하버드대 총장 출신 저명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는 이날 엑스에 “몇몇은 순진하고 어리석었겠지만, 건설적이지 않은 개인 비방이 벌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서명 이유로 블랙리스트? 과도한 개인 비방"

법학자인 로렌스 트라이브 하버드대 교수도 CNN 인터뷰에서 “(서명한) 학생들 이름을 공표하고 테러분자들이 이스라엘에 한 짓을 마치 그들이 실제로 지지한 것처럼 보이도록 해 철부지 학생들에게 영구 처벌을 가하는 건 지나친 대응”이라며 자제를 촉구했다.

앞서 하버드대 학생 단체 34곳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당일인 7일, ‘하버드 팔레스타인 연대 그룹’ 명의로 성명을 내고 “20년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 수백만 명은 ‘야외 감옥’에서 살도록 강요당했다”며 “이스라엘 정권이 이번 폭력 사태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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