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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친숙하지만 맛이 없어 슬픈 도토리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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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야산 기슭에만 올라도 도토리가 발길에 차이는 계절입니다. 나무가 많은 도심 공원에서도 간혹 눈에 띕니다. 고만고만한 형태를 보고 있자면 '도토리 키재기'란 속담이 절로 떠오릅니다.
참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는 동글동글한 모양만큼이나 귀여운 순우리말 이름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캐릭터로 활용되는 이유입니다. 중장년이라면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세계 최초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싸이월드 속 가상화폐 도토리로도 친숙합니다.
도토리는 음식이 귀했던 시절 식용으로 많이 활용됐지만 요즘은 건강식품이나 도토리묵 정도가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다람쥐에게 양보할 뿐 묵을 쑤기 위해 도토리를 줍는 사람도 그리 없습니다. 해독 작용과 노화 방지 등 다양한 효능에도 불구하고 맛이 없는 게 주된 이유일 겁니다.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는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들의 통칭입니다. 수종으로는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가시나무 등이 있고 각각의 나무마다 종류도 다양합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도토리는 원래 떡갈나무 열매인데 차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상수리나무 열매를 포함해 참나무과 열매를 모두 통칭하게 됐습니다. 갓으로 불리는 도토리 윗부분이 도톨도톨한 게 어원인 것 같지만 돼지를 뜻하는 '돝'이 유래라고 합니다. 돝밤(돼지가 먹는 밤)이 변화를 거치며 발음하기 편하게 뒤에 '이'가 붙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나 참나무가 흔하니 돼지는 물론 사람도 도토리를 잘 먹었을 겁니다.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도토리 저장시설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이로 미뤄 신석기시대나 그 이전부터 섭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도토리는 흉년이 없다고 할 정도로 소출이 많습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참나무는 수종에 따라 해거리를 해 열매가 적게 맺히는 시기가 있어도 원체 다수확 수종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도토리가 많이 열려 흉년이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도 통계에 잡히는 생산량은 극히 적습니다. 통계청의 임산물 생산 현황을 보면 2021년 전국의 도토리 생산량은 4,522㎏에 불과했습니다. 밤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양입니다. 같은 해 충남에서 생산된 밤만 따져도 2,464만㎏입니다. 충남에서는 호두도 16만㎏이 나왔는데, 도토리 생산량은 고작 15㎏에 그쳤습니다. 도토리를 활용한 산업이 거의 없어서입니다. 산에 도토리가 차고 넘쳐도 다람쥐의 먹이거나 일반인들이 주워 오는 수준입니다.
도토리는 예부터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의보감에도 '설사와 이질을 낫게 하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한다'고 기록됐습니다. 낮은 칼로리에 식이섬유 함량은 높아 많이 먹지 않아도 포만감을 느끼게 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고, 아코니트산(aconitic acid)이 들어 있어 해독과 몸속 중금속 등 유해물질 배출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도토리의 주요 성분인 타닌(tannin)이 콜레스테롤을 조절해 지방 형성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또한 항산화물질도 많이 함유돼 노화 방지에도 좋은 식품입니다.
이런 효능을 가로막는 것은 타닌이 유발하는 쓰고 떫은 특유의 맛입니다. 잘 익지 않은 도토리를 과하게 섭취하면 소화불량이나 변비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다람쥐조차 다른 견과류를 주면 도토리보다 잘 먹는다고 할까요.
배고팠던 과거에는 구하기 쉬운 도토리가 구황작물로 쓰였습니다. 매우 번거롭지만 며칠씩 물에 불려 쓴맛을 빼고 갈아서 전분을 뽑아내 묵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도토리 밥이나 국수로도 섭취했는데 먹을 게 흔해지니 음식으로의 활용은 줄었습니다. 참나무가 많은 외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일본에서 국수로 먹는 사례가 있는 정도입니다.
식용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도토리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는 도토리에 많이 들어 있는 항산화물질에 주목했습니다.
2020년부터 연구를 시작해 주로 한반도 남쪽에 자생하는 상록성 참나무 가운데 붉가시나무와 종가시나무, 개가시나무 도토리 껍질에서 피부질환을 유발하는 녹농균에 대한 항균성을 확인했습니다. 연구 결과 시중에서 판매되는 피부 재생 연고와 비교해도 효능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도토리를 먹으면 건강에 좋은 것은 물론이고 피부에 발라도 효과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연구진은 세 가지 나무 도토리 추출물로 각각 특허를 출원했고 시제품도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제주에서 열린 분자세포생물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연구 결과도 발표했습니다. 최식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 임업연구사(이학박사)는 "우리 산에 많은 도토리가 더 많이 활용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도토리로 만든 기능성 화장품이나 천연 연고를 만날 날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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