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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간다는 나라의 이상한 연금개혁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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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낮은 출생률에 대한 외국 평가가 섬뜩하다. EBS '다큐멘터리 K-인구대기획 초저출생'에서, 작년 출생률이 0.78이라는 말을 들은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는 머리를 감싸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를 연발했다. 지난 4일에는 환경·과학·의학 분야의 독일 유튜브 채널인 '쿠르츠게작트(Kurzgesagt)'에 '한국은 왜 망해가나'(Why Korea is Dying Out)라는 영상이 게시됐다. 이 유튜브의 섬네일에는 녹아내리는 태극기 이미지가 담겨있다. 필자가 칼럼을 최종 마무리하는 시점(11일 정오) 기준으로 조회수 510만 회, 댓글은 2만 7,831개가 달렸다. 특단 대책이 없다면, 대한민국이 재기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지난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연금개혁은 꼭 하겠다고 하여 기대가 적지 않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이 아닌 국회에 연금 특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난제 중의 난제라고 불리는 연금개혁을 국회 특위에서 금년 4월까지 마무리하겠다고 했을 때도 의아했었다. 어떤 복안이 있기에 저리도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지난 1월에는 국회 특위 민간자문위원회에서 집중토론이 있었다. 1월 말에 2일 연속의 집중토론을 거쳐 특위에 2가지 안을 제출하기로 의견을 모은 뒤, 각각의 안의 완성도를 높이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회의 종료 30분 전에 중재하겠다고 나서면서, 합의 내용을 무효화시켰다. 결론도 없이 1기 특위가 종료된 배경이다. 10월까지 연장된 특위는 자문위원 4명을 더 늘려 논의 범위만 넓혀 놓고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매번 바뀌는 발표 주제에 대해 위원들이 한두 번 코멘트하는 형식으로 회의가 진행되고 있어서다. 그런데 연금개혁의 공론화 필요성을 거론하며 내년까지 또 특위 활동기한을 연장하겠다고 한다. 최대 쟁점 사항인 재정안정방안과 노후소득보장 강화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없어 아직 결론도 나지 않았는데, 무슨 내용으로 공론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행정부의 재정계산위원회 상황은 어떠한가? 최대 쟁점 사항인 재정안정방안에 대해서는 거론될 재정추계 관련 내용들이 워낙 민감한 사항이다 보니, 논의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하여, 당초 논의 예정 시점이었던 3월 초에서 5월 말로 연기되었다. 수지균형 확보를 위해 제도를 재설계하는 방안 위주로 논의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기금운용 수익률 등 부수적인 주제에 더 많은 논의 시간을 할애하였다. 이로 인해 충분히 논의할 시간은 없었으나, 재정계산위원 상당수가 국회 특위 자문위원과 겹치다 보니, 보험료를 15%까지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수 위원이 공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봉책 위주로 재정계산위원회를 운영하다 보니 공청회 자료를 만드는 편집위원회에서 결국 사달이 났다. 전체회의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던 소득대체율 50%, 소위 말하는 소득보장 강화안을 공청회 자료에 어떻게 수록하느냐가 쟁점으로 등장해서였다. 8월 11일과 18일 개최된 두 차례의 전체회의에서 소득대체율 40%와 50%를 공청회 자료에 어떻게 수록할 것인지에 대한 위원들의 투표가 있었다. 두 차례 모두 소득대체율 50%를 '소수의견', 소득대체율 40%는 '다수의견'으로 표시하자는 투표결과가 나왔다.
당초에 50% 소득대체율안을 공청회 자료에 담기 원했던 측에서는 소수의견과 다수의견이 표시된다면, 50% 소득대체율 안을 공청회 자료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의 주장과 달리, 필자는 투표결과 그대로, 즉 40%와 50% 관련 내용 모두를 공청회 자료집에 담아야만 한다고 항의하면서 18일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이미 두 차례의 투표결과가 있었음에도, 그 투표결과를 뒤집으려는 회의를 또 시작하려고 해서였다.
필자가 퇴장하고, 여러 위원도 자리를 뜬 상황에서 진행된 회의에서 소득대체율 50% 관련 내용 삭제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회의 진행에 대해, 필자는 당일 저녁부터 거듭 문제를 제기했다. 이미 결정되었던 내용을 뒤집으면 안 된다고! 그런데 위원회 파국을 막겠다는 이유를 들어 소득대체율 50%를 제외해 달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50%로 인상하는 안이 삭제된 자료로 9월 1일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그런데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빼 달라고 해서 빼 주었는데, 적반하장격으로 위원회 재정안정론자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강제로 빠졌다고 공청회 회의장 앞에서 대대적으로 시위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왜곡된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여전히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 모습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대한민국 민낯이다.
이 대목에서 묻고자 한다. 왜 재정계산위원회는 이처럼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반박 보도자료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지 않고 있는가? 필자가 이 칼럼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의 진위는 실명으로 기술된 회의록 전문을 공개하면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공청회가 끝나면 즉시 회의록을 공개하겠다던 당초 약속과 달리, 아직도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재정계산위원회가 수일 내로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재정계산위원회 사무국이 정리한 회의록을 필자가 공개할 수 있다. 지난 8월 이후 벌어지고 있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을 국민·언론과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공청회가 개최되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재정계산위원회에서 거론된 재정안정방안은 2〜3개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 1월 특위 자문위원회에서 발생했던 일과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18개나 되는 재정안정 조합을 공청회에서 발표하면서, 행간을 읽어보면 위원회가 어느 안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공청회 개최방식이었다.
전문가가 모여서 논의하는 위원회, 특히 재정계산위원회는 위원회 성격과 목적이 명확하다. 공청회 자료집에 수록된 내용처럼 '국민연금법' 제4조(국민연금 재정계산 및 장기재정균형 유지)는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는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1항)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이 법에 따른 연금보험료, 급여액… 등은 국민연금의 장기재정 균형 유지, 인구구조의 변화… 그 밖에 경제 사정에 뚜렷한 변동이 생기면 그 사정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3항)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 관련법에 따르면, 팩트와 정연한 논리에 근거하여 현재 우리 현실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1∼2개의 안을 만들어 국민·언론·정부·정치권에 제시하는 것이 재정계산위 운영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복지부 자문위원회가 최선의 안을 제시하면, 공청회 내용 등을 반영하여 최종적인 제도 개편안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부가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그때부터 입법 관련 논의가 진행된다.
2003년 1차 국민연금 재정계산부터 2018년 4차 재정계산 때까지 해 왔던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영문인지, 행정부와 국회가 전문가 위원회에 이 역할을 핑퐁 치듯이 떠넘기고 있는 것 같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문재인 정부의 4차 재정계산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공청회 개최 결과 소득보장 강화안이 빠졌다는 의견이 많아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흘리면서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청회 패널 선정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해 급여율을 더 낮추자는 주장을 하는 패널이 포함되지 않아서다. 지난 1월 국회 특위 자문위의 집중토론 당시에도 소득대체율을 30%로 10%포인트 하향 조정하자는 안이 나왔었다. 소득대체율 50%를 주장하는 안이 있으면, 당연히 30%를 주장하는 안도 동일한 비중으로 논의에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연금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젊은 세대가 특히 선호하는 안이라서 그러하다.
필자가 발제자로 참여했던 '하우스 어셈블리' 토론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의동 의원실과 협동조합 하우스가 4월 6일에 공동 개최한 토론회에서 MZ 세대 패널이, 직장인 커뮤니티의 블라인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전체 465명 중에서 이렇게 국민연금을 운영할 거면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원금 돌려 달라'고 63.4%가 응답했다. 응답자 30.1%는 '국민연금 가입을 선택제로 하자'고 했다. 6.5%만이 '국민연금을 그대로 납부하겠다'고 응답했다. 이게 우리 국민연금이 처한 실제 모습이다. 토론회 말미에는 레드카드를 들어 연금개혁에 미온적인 정치권을 경고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연금 세미나에 참여한 대학 학보사 기자 패널들의 발언 때문이다.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연금연구회가 주관하고, 안철수 의원실·인재근 의원실·조정훈 의원실이 공동 개최한 세미나에서 청년 패널이었던 숙대신보의 김민경 기자, 서강학보 박주하 전 기자, 김주영 경북대신문 편집국장 모두가 하루빨리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소득대체율 인상이 아닌, 보험료 인상의 시급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연금의 미래를 책임질 이런 청년들이 공청회 패널에 포함되었다면, 공청회 토론을 근거로 소득대체율을 더 인상하는 안이 재정계산보고서에 수록되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9월 13일 연금 세미나에서는 너무도 의미가 큰 수치가 발표되었다. 필자가 재정계산위원회와 국회 연금특위에 수차례 공개를 요청하였음에도 거부되었던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를, 연금연구회 소속인 한양대 전영준 교수(한국재정학회 전 회장)가 공개해서다. 재정계산위와 국회 특위가 공개하지 않다 보니, 세미나를 통해서 이 수치를 발표한 것이다. 미적립부채란 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중에서 부족한 액수를 의미한다. 전 교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현재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1,825조 원(GDP 대비 80.1%)에 달한다. 이는 2,129만 명 국민연금 가입자 1인당 8,572만 원의 빚이 있음을 의미한다. 필자가 수년 전부터 강조해 왔던 아무리 적게 잡아도 미적립부채가 1,500조 원이 넘는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결과다.
재정계산위원회에서 실제 진행되었던 논쟁과 달리 '재정안정'과 '소득보장강화'란 프레임을 설정하여 언론 등에서 대립 구도를 강조해 오다 보니, 한 번에 제대로 된 개혁을 하기 어렵다고 보아, 이번에는 우선 낮은 단계의 개혁부터 하자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지난 9월 20일 국회 연금특위 자문회의에서 제안되었던, 소득대체율을 2%포인트 올리고(2024년부터 42%로 고정), 보험료는 12%까지 3%포인트 인상하는 안이 그것이다. 일견 괜찮아 보이는 이 제안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도 미적립부채 개념이 필요하다.
본 칼럼을 쓰기에 앞서 연금연구회 소속인 한양대 전영준 교수와 협의하여, 소득대체율을 42%로 2%포인트 상향 조정할 경우의 미적립 부채를 추정해 봤다. 소득대체율을 42%로 고정할 경우 전 교수가 추정한 2023년 현재 미적립 부채는 1,996조 원이다. 소득대체율 40%에 비해 미적립 부채가 171조 원 늘어난다. 사소해 보이는 소득대체율 2%포인트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태평양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커다란 폭풍을 일으킨다'는 비유를 떠오르게 한다.
외국에서 대한민국이 망해가는 이유로 드는, 낮은 출산율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2050년의 미적립 부채 변화추이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전영준 교수 추정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할 경우의 2050년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5,538조 원이나, 42%로 2%포인트 인상하면 6,068조 원으로 늘어난다. 보험료를 12%로 3%포인트 인상한 결과가 이러하다.
2023년 현재 2,129만 명인 국민연금 가입자가 2050년에는 1,534만 명으로 줄어든다(재정계산 공청회 자료집). 소득대체율 40%에서는 2050년 국민연금 가입자 1인당 빚이 3억 6,000만 원이다. 반면에 소득대체율을 2%포인트 올린 42%에서는, 1인당 빚이 3억 9,000만 원이 넘는다. 단 2%포인트 소득대체율 차이가 27년 후인 2050년에 가면 3,455만 원의 빚을 더 늘리게 된다. 2070년과 2090년에 가면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나게 된다. 외국에서 우리가 망해가고 있다고 하는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거론하면서 소득대체율을 더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우리보다 두 배도 넘는 18.6%의 보험료를 부담하는 독일의 2050년 소득대체율이 37%, 18.5%를 부담하는 스웨덴의 소득대체율은 33%로 전망된다. 독일과 스웨덴 정부가 EU 본부에 제출한 자료에 수록된 내용이다. 명지대 김도형 교수가 집필한 '공적연금'(해남출판사, 근간)에는 우리가 원래 도입하려고 했던 1973년 국민복지연금법의 소득대체율이 기술되어 있다. 놀라지 마시라. 당시의 사회적인 여건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었음에도, 국민복지연금법의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기준으로 38%였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거라 할 수 있다.
전문가가 모여 논의한 위원회라면 이러한 내용을 담아, 국민과 언론, 정치권에 연금개혁의 시급성과 제대로 된 개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5차 국민연금재정계산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하여야만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린 문제라서 그렇다. 정부와 국회가 재정계산위원회 회의록, 2093년까지의 국민연금 누적적자, 국민연금 미적립부채를 하루라도 빨리 공개해야만 하는 이유다. 제대로 된 연금개혁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준거 자료라서 그러하다.
그렇게도 우리 사회가 열망하는 공적연금을 통한 노후소득 강화는, 더 오랜 기간을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실질 소득대체율을 올릴 수 있게 된다면 가능해진다. 독일과 스웨덴의 국민연금 실제 가입기간은 이미 40년을 넘어섰다. 50년이 지나고서도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7년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치에 근거하여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주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우리의 노동시장 환경이 50년 뒤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한다.
주요 국가들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65세, 그 이후까지의 계속 고용이 가능할 수 있게 하는 노동시장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초고령사회 계속 고용연구회'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근로자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하루라도 빨리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고령 근로자 빈곤 해소와 공적연금을 강화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길이라서 그러하다. 기나긴 노후소득 크레바스로 인해 고통받는 대다수 중·고령 근로자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주력 사업장 대부분이 이미 성숙 단계로 진입한 산업들이다 보니, 노동시장 개혁 없이 그대로 정년을 연장할 경우 청년고용이 더 어려워지고, 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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