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 욕했다고 물고문... 법원 "형사보상 더해 위자료도 줘야"

입력
2023.10.11 11: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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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금으론 1억1000여만 원 책정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금지는 부당"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한국일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한국일보

1979년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했다가 고문을 당하고 구금됐던 시민이 이미 형사보상금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피해 배상 성격의 위자료를 별도로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부마항쟁에 참여했다가 수사기관에서 물고문을 당했던 A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9호 등 유신체제 폭정에 반대해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다.

A씨는 1979년 10월 19일 부산 동구에서 행인에게 "중앙정보부가 데모하는 학생을 잡아 전기고문을 하고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린다"며 "현 정부는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서에서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해 '상세불명의 기분 장애'와 '긴장형 두통' 등을 앓게 됐다. A씨는 이듬해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지만, 2019년 9월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금에 따른 형사보상금 4,676만 원과 이후 제정된 부마항쟁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 861만 원도 받았다.

A씨는 그러나 2021년 11월 국가를 상대로 3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측은 "경찰이 위헌·무효인 계엄포고령을 근거로 영장 없이 체포·구금해 수사를 진행한 건 불법체포"라며 "수사관들이 욕조에 머리를 집어넣어 숨을 못 쉬게 하는 가혹행위를 하는 등 정신적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부마항쟁보상법상 '보상금 지급 결정에 동의한 경우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는 규정 등을 근거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하급심은 국가가 A씨에게 1억,1324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국가가 지급할 위자료를 1억6,000만 원으로 산정한 뒤 형사보상금을 뺀 것이다. 재판부는 "정신적 손해와 무관한 보상금 등을 지급한 다음,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를 금지하는 것은 적절한 손해배상을 전제로 관련자를 신속히 구제하고 지급 결정에 안정성을 부여하려는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불법행위 당시 시대적 상황 등에 비춰 A씨뿐 아니라 가족들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원심에 법리오해 등 문제가 없다고 보고 판결을 확정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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