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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기 싫으면 다른 곳 가라'...이 햄버거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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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금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200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우리는 이른바 수제버거의 열풍을 겪었다. 미국의 경향을 그대로 들여온 느낌의 수제버거 유행은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대재앙이었다. 풍성함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가운데 형식만 차용 혹은 모방을 하려다 보니 많은 버거가 사용자 경험(UX)을 무시한 재난에 가까웠다. 먹기에 너무 불편하고 맛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많은 이른바 전문점이 빵과 패티로 바벨탑을 쌓다가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 시기를 뒤로하고 이제 우리의 햄버거도 좋은 의미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확보했다. 맥도날드나 버거킹처럼 전형적인 프랜차이즈의 문법을 따르되 더 좋은 재료를 바탕으로 완성도를 높인 결과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내용물도 굳이 튀려 들지 않는 그저 한 끼의 좋은 식사가 되고 싶은 충실한 버거들이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사실 ‘패스트 캐주얼 버거’는 이미 국내에 안착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SPC는 ‘쉐이크쉑’을 2016년에 선보인 이후 25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가능성 타진의 단계는 넘은 것이다. 그 이후 지난 6월엔 한화갤러리아의 자회사 (주)에프지코리아도 ‘파이브가이즈’ 매장을 서울 강남에 열었다. 원조 패스트 캐주얼이라 할 수 있는 ‘인앤아웃 버거’도 3, 4년마다 서울에 팝업 스토어를 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세 대표 패스트 캐쥬얼 버거 브랜드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했다.
파인 다이닝의 영향을 받은 쉐이크쉑
쉐이크쉑 성공의 기원은 ‘혼종교배’다. 많은 음식점처럼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손길이 스쳐 지나간 뒤 ‘창대’해졌다. 쉐이크쉑의 뒤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뉴욕의 레스토랑 ‘일레븐 메디슨 파크’, ‘그래머시 태번’ 등의 사업가 대니 마이어가 있기 때문이다.
쉐이크쉑의 탄생은 뉴욕의 도시 재생 사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뉴욕시는 버려져 있었던 매디슨 스퀘어 공원의 재건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레스토랑 사업가 대니 마이어는 매디슨 스퀘어 공원 관리단을 발족해 재개발에 공헌한다. 마이어의 사업을 총괄하는 운영 국장인 랜디 가루티는 미슐랭 별 셋의 레스토랑 일레븐 매디슨 파크의 주방에서 핫도그 카트를 파생시켜 음식을 팔기 시작한다. 카트는 같은 자리에서 3년 동안 영업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그 이후 2004년, 뉴욕시가 매디슨 스퀘어에 음식 판매를 위한 가건물(키오스크) 설치를 추진하자 마이어는 햄버거로 참여했다. 쉐이크쉑의 첫 번째 매장이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마이어와 그의 사업체(USHG)는 확장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뉴욕시와 매디슨 스퀘어의 명물로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겠다는 심산이었지만 영업이 너무나도 잘되자 생각을 바꾼 것이다.
2023년 기준 쉐이크쉑은 미국 내 262곳, 그 밖 해외에 141곳의 매장을 지닌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매장별 평균 매출액이 400만 달러(약 54억 원)로 미국 내 맥도날드의 두 배 수준이고, 대니 마이어 사업체 가운데서도 최대 규모의 자산을 자랑한다. 2015년에는 주당 21달러로 기업을 공개해 주식 거래를 시작했고 현재는 주당 55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버거, 파이브 가이즈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좋아하는 버거’로도 유명한 파이브 가이즈는 상호가 일정 부분 창업의 역사를 설명한다. 창업주인 제리 머렐은 재계에서 일하면서 호시탐탐 자신만의 사업을 펼칠 기회를 노렸다. 석유 및 먹는 샘물 사업에 손을 댔으나 성공하지 못한 가운데 1986년 요식업에 도전했다. 어머니의 ‘좋은 바(Bar)나 햄버거 가게 그리고 미장원은 어떻게든 돈을 번다’라는 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는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세 아들 짐, 매트, 채드에게 가능성을 타진했다. 자금을 모아두었으니 원한다면 같이 햄버거 가게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세 아들은 모두 햄버거 장사에 뛰어들었다. 그 뒤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 벤까지 총 다섯 명이 가세해 1986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파이브 가이즈 1호점을 열었다.
5부자는 있는 돈을 다 끌어모았지만 시작은 미약했다. 파이브 가이즈 1호점은 목이 좋지 않은 곳에 있었고 허름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탓이다. 주방기기도 고장난 것을 매입해 직접 고쳐 써야만 했다. 이처럼 시작은 순탄치 않았지만 이들은 점점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으로 메뉴는 단출하지만 무조건 최상의 재료를 고집해 ‘오직 맛으로 승부하는 버거집’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이다.
심지어 제리 머렐은 매장에 ‘버거를 기다리기 싫다면 다른 집에 가서 드세요’라는 문구까지 붙이며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쳤지만 초기에는 확장에 매우 보수적이었다. 2002년까지도 직영점은 다섯 곳에 불과했다. 이후 파이브 가이즈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개시해 현재는 미국 안팎으로 1,700군데가 넘는 매장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막내아들 타일러가 가세하면서 파이브 가이즈는 변화를 맞는다. 창업주이자 아버지인 제리가 빠지고 제2기 파이브 가이즈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첫째와 둘째 아들인 짐과 매트는 미 전역을 돌며 매장을 관리하고 셋째 채드는 직원 교육을 맡는다. 넷째 벤은 프랜차이즈 운영자 선별을 담당하고, 막내 타일러는 햄버거 번을 굽는 베이커리를 관리한다. 오늘날까지도 파이브 가이즈는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손님을 끌어모으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조 패스트 캐주얼 ‘인앤아웃’
패스트 캐주얼, 즉 접객을 제공하지 않는 대신 높은 수준의 음식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레스토랑의 개념은 1990년대 미국에서 등장했다. 멕시코 음식 프랜차이즈인 ‘치폴레’가 선구자 격으로 꼽힌다. 인앤아웃 버거는 개념이 정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패스트 캐주얼을 실행에 옮겨 오늘날까지 사업을 꾸려 오고 있다. 그만큼 이 버거는 완성도가 높다.
완성도를 고수하기 위해 인앤아웃은 햄버거 전문 브랜드로서는 이례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1948년 캘리포니아의 볼드윈파크(로스앤젤레스의 교외)에서 영업을 시작한 뒤 올해로 74주년을 맞이했지만 매장은 고작 387곳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부분이 본거지인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 퍼져 있다. 인근의 오리건이나 애리조나, 네바다 같은 주에 소수의 매장이 있을 뿐이다. 텍사스 남쪽으로는 아직 매장을 내지도 않았다. 387곳의 매장도 모두 본사의 직영점이다.
이는 창업주인 해리 스나이더(1913~1976)의 방침을 오늘날까지 충실하게 따른 결과이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가 불가피한 품질 저하를 겪으며 맥도날드 같은 거대 프랜차이즈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1976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인앤아웃의 매장은 고작 18곳이었다. 인앤아웃은 오늘날까지 3대에 걸쳐 가족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고, 이 회사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프랜차이즈 사업은 물론 기업 공개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2015년엔 스타트업인 ‘도어대시’가 인앤아웃의 음식을 배달하기 시작하자 이를 막기 위해 고소를 한 적도 있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조차 극도로 신중하게 운영되고 있는 브랜드이기에 인앤아웃의 국내 진출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에서 3, 4년마다 팝업 스토어가 열리고는 있지만 이는 2012년에 국내에 상표권 등록을 한 뒤 이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미국 내에서도 당일 내 식재료 배송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매장을 여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인앤아웃이 단숨에 해외 매장을 열 것이라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5월 국내에 인앤아웃 팝업 매장이 4년 만에 열리자 국내 진출이 곧 성사된다는 뉴스가 나오기는 했다. 협력 사업체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된 기사였지만 곧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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