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초라하게 빛바래 가는 꽃무덤, 고인이 과연 원할까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심각했던 쓰레기 문제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는 생태계 파괴뿐 아니라 주민 간, 지역 간, 나라 간 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쓰레기 박사'의 눈으로 쓰레기 문제의 핵심과 해법을 짚어보려 합니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의 저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한국일보>에 2주 단위로 수요일 연재합니다.
명절만 되면 선물 과대포장 문제와 더불어 성묘객들의 조화 쓰레기가 논란이 된다. 묘지 앞의 낡은 조화를 새로운 조화로 교체하면서 명절만 되면 공원묘지에서는 예쁜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난다. 매년 2,000톤 이상의 조화가 중국 등에서 수입되고 있고, 그만큼 쓰레기로 배출되고 있다.
조화는 줄기가 철사에 플라스틱으로 피복되어 있으며, 잎과 꽃잎도 플라스틱이다. PVC와 PE, 나일론 등이 재료로 사용된다. 무덤 앞을 장식하는 꽃은 이제 거의 대부분 조화다. 공원묘지 앞 가게에서도 생화를 거의 판매하지 않는다. 무덤 앞에서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다 보니 조화에서 미세 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져 나와 무덤을 오염시킨다.
언제부터 꽃으로 무덤을 장식하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 전통 장례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도 유교식 장례 문화를 고수하는 지방의 일부 집안은 장례식장에 화환을 보내면 크게 화를 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전통 장례 문화에서 꽃으로 치장을 하는 곳은 상여밖에 없다. 꽃상여는 생전 고생을 한 고인의 마지막 배웅을 화려하게 하려는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다.
장례식장이나 무덤에 꽃을 바치는 문화는 구한말 이후 서양의 장례 문화가 도입되면서부터다. 고대 로마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염원하기 위해서 헌화를 했고, 묘지 주변에 장미를 심었고, 중세 유럽인들도 영혼의 재생을 염원하며 묘지에 장미를 심었다고 한다. 장례식장에 흰 국화를 바치는 것은 기독교 장례문화와 일본식 장례문화, 장례식장에서 흰옷을 입는 우리나라 문화가 결합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추모의 마음을 꽃으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로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서양에서 도입된 문화라고 해서 헌화 문화를 배격할 필요는 없다. 시대 변화에 따라 문화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무덤에 꽃을 바치는 문화가 플라스틱 꽃으로 변질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묘용으로 조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자주 찾지 않기 때문에 시들지 않는 조화가 무덤 장식용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또 공원묘지에서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 다른 무덤과 비교당하기 싫어서 조화를 고집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자주 찾아와서 꽃을 교체해 주지 않으면 조화라 하더라도 야외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으면 빛이 바래져서 무덤의 미관을 해친다. 빛이 바랜 조화가 무덤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그 무덤을 초라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시들지 않는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으로 억지로 만든 시들지 않음은 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플라스틱으로 장식한 무덤을 고인이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김해시나 부산시 등 여러 지자체에서는 조례로 공원묘지 조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국회에도 조화 사용을 억제하는 법률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되어 있다. 그렇지만 조화를 선호하는 문화도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올해 안에 규제 강화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화까지 규제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후 및 미세플라스틱 위기의 시대에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은 줄여 가는 것이 맞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