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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 묘에 놓은 조화, 추모보다 미세플라스틱이 오래 남는다

입력
2023.10.11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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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쓰레記]
조화 재질 몰라 재활용·재사용 불가
소각·매립돼 온실가스·미세플라스틱 유발
지자체 묘원 조화근절 캠페인 시작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달 17일 강원 춘천시 동산면 군자리 춘천공원묘원에서 시민들이 이른 추석 성묘를 하고 있다. 묘비마다 형형색색의 생화와 조화가 놓여 있다. 춘천=연합뉴스

지난달 17일 강원 춘천시 동산면 군자리 춘천공원묘원에서 시민들이 이른 추석 성묘를 하고 있다. 묘비마다 형형색색의 생화와 조화가 놓여 있다. 춘천=연합뉴스

지난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충북의 한 국립묘지에 성묘를 다녀왔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지요. 명절을 맞아 많은 성묘객들이 모여 묘역이 매우 붐볐습니다. 고인을 위해 송편과 과일 등을 가져온 사람들을 보니 마음도 가을 햇살처럼 따뜻해졌어요.

이미 다녀간 성묘객들이 놓고 간 꽃도 많이 보였습니다. 주로 흰색 국화 몇 송이를 눕혀 둔 경우가 많았는데요. 아예 꽃 화분을 놓고 가거나, 묵직한 조화를 놓고 간 곳도 눈길이 가더라고요. 모양은 달라도 둘 다 고인이 오랫동안 꽃을 감상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 같았습니다. 화분도 조화도, 줄기가 잘린 꽃송이보다는 좀 더 오래갈 테니까요.

안타깝게도 이 꽃들은 며칠 내로 모두 폐기될 예정입니다. 묘지를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서죠. 이때 화분과 조화의 운명은 크게 달라집니다. 화분은 주변 빈 땅에 옮겨 심을 수도 있고, 생화와 함께 폐기하더라도 자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죠. 하지만 조화는 분해돼 미세플라스틱과 온실가스로 남을 운명입니다. 빨대, 비닐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이기 때문입니다.

정체불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재활용·재사용 어려워

지난달 8일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직원들이 추석맞이 벌초를 하고 있다. 대전=뉴시스

지난달 8일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직원들이 추석맞이 벌초를 하고 있다. 대전=뉴시스

조화에 달린 형형색색의 꽃잎은 옷의 재료가 되는 플라스틱 섬유로 만듭니다. 폴리에스테르(PE)와 나일론이 주로 쓰이고 폴리염화비닐(PVC)도 들어가죠. 시간이 지나도 시들지 않고 빳빳한 초록 줄기는 주로 합성 플라스틱으로 만듭니다. 우리나라의 분리배출 체계에 따르면 '아더(other·기타)'라고 표시될 복합 재질이죠.

조화 자체에는 재질이 표시돼 있지 않습니다. 포장재처럼 재활용 의무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죠. 플라스틱 조화의 거의 대부분이 중국 등에서 수입되고 있어 재질 확인도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조화를 정확히 분리배출해 재활용 소재로 활용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저 재질 불명의 다른 생활계 플라스틱 쓰레기들과 함께 소각 또는 매립되는 실정이죠.

조화를 플라스틱 칸에 버린다고 해도 선별시설에서는 재활용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재질도 모르는 데다 줄기에 숨어 있는 철사 탓에 플라스틱을 일일이 분리해 내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꽃잎에 쓰이는 PVC 재질은 염소(CI) 함량이 높아 기계 설비를 부식시키고 다른 플라스틱의 재활용도 방해하는 불청객입니다. 환경부가 2019년 말부터 포장재에 PVC 사용을 금지하고 지난해 분리배출 표기에서도 삭제한 이유입니다.

외부에 놓인 플라스틱 조화는 색이 바래고 풍화돼 미세플라스틱을 남기게 됩니다.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 제공

외부에 놓인 플라스틱 조화는 색이 바래고 풍화돼 미세플라스틱을 남기게 됩니다.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 제공

재활용이 어렵다면 재사용은 어떨까요? 어차피 썩지도 상하지도 않는 꽃이니까요. 하지만 조화도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고 질감도 손상됩니다. 게다가 고인을 추모하는 용도이다 보니 다시 쓰는 게 정서상 용납되지 않는 실정이죠. 오죽하면 경조사 화환 업체에서 ‘조화를 재사용하지 않는다’고 광고를 하겠어요.

매년 묘지에 놓이는 조화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각 공공묘지에 따라 적게는 연간 10톤, 많게는 100톤이 수거돼 버려진다고 합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국내로 수입된 플라스틱 조화는 2만4,141톤에 달한다고 해요.

그린피스에 따르면 플라스틱 1톤당 약 5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고 합니다. 플라스틱 생산을 위한 석유 추출 및 정제부터 분해, 사용, 소각에 이르는 전 단계를 추정한 것인데요. 이에 따르면 플라스틱 조화로 인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폐기물과 온실가스가 배출될지 짐작이 갑니다.

게다가 새 조화 한 다발에선 평균 220개, 오래 방치돼 풍화된 경우 평균 1,284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연구도 있습니다(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 '국내 조화사용 현황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분석').

공공묘원 조화사용 금지 나서는 지방자치단체들

6·25전쟁 7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해 6월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6·25 전사자 묘역에서 참전 유가족이 비바람에 쓰러진 조화를 다시 꽂고 있다. 홍인기 기자

6·25전쟁 7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해 6월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6·25 전사자 묘역에서 참전 유가족이 비바람에 쓰러진 조화를 다시 꽂고 있다. 홍인기 기자

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많지만, 조화가 국립묘지에 놓이게 된 이유는 있습니다. 자녀나 가족이 없는 고인의 자리가 허전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조화를 놓기 시작했거든요. 특히 6·25 전쟁 때 전사한 군인이나 독립유공자 등을 모신 국립서울현충원의 경우 아무도 찾지 않는 묘지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서울현충원은 자체 예산 약 1억5,000만 원을 들여 현충일과 국군의날에 직접 헌화를 하고 있습니다.

변화는 시작됐습니다. 경남 김해시는 올해 설 연휴부터 관내 전 공원묘원에서 플라스틱 조화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성묘객에게 생화나 말린 꽃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와 협약을 맺어 함께 생화를 무료로 나눠주었다고 하네요. 김해 시내 묘원에서는 연간 플라스틱 조화 쓰레기 43톤이 발생했지만 올해는 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협의회의 홍영수 사무국장은 “최근 조화 사용의 문제의식을 갖고 탄소중립을 실천하려는 지자체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이를 대체하기 위한 협약을 계속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습니다.

부산시 역시 올해 추석부터 영락공원 등 시내 공설·민간 공원묘지 5곳에 플라스틱 조화 반입을 제한했습니다. 연간 20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국립 대전현충원은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2026년까지 묘역 내 배치됐던 플라스틱 화병을 돌 화병으로 교체하고, 조화 대신 생화를 헌화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하네요. 아직은 묘원 곳곳에 조화가 보이는 실정이지만, 몇 년 뒤 명절 성묘 풍경은 사뭇 달라질 것 같습니다.

올해 1월부터 관내 묘원 조화사용 근절 캠페인을 시작한 경상남도의 포스터. 경상남도 제공

올해 1월부터 관내 묘원 조화사용 근절 캠페인을 시작한 경상남도의 포스터. 경상남도 제공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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