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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냄새에 찡그리고 돌아선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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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인 오늘 생선 가게에서 나오는 길에, RER역으로 내려가는 더러운 계단 꼭대기의 쓰레기통 근처에 너부러진 남자에게 10프랑을 주었다. 가난과 술로 피폐해진 얼굴. 몹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즐거운 성탄절을!」 그가 소리쳤다. 나는 기계적으로 답했다. 「당신도요.」 그러고 나니 스스로가 어찌나 혐오스러운지, 부끄러움을 지우기 위해서 그의 외투를 두르고 그의 손에 키스하고 그의 입 냄새를 느끼고 싶어질 정도다."
회사가 서울역 근처라 자주 역사 주변을 지나다닙니다. 고백하자면 정말 급하지 않으면 피해 가는 지하도가 하나 있습니다. 24시간 노숙인들이 기거하는 곳입니다. "고약한 냄새"에 숨을 참고 걸은 적도 있습니다. (변명이지만) 노숙인 자립을 돕기 위해 발행되는 잡지를 사 읽고, 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기사를 쓸 때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진심은 참 얕았습니다. 저 깊은 내면, 내재화된 혐오와 편견은 가장 본능적인 반응으로 툭 튀어나왔던 겁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2022)인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신간 '밖의 삶'을 읽는 동안 그런 인간의 모순 혹은 이중성을 곱씹게 됩니다. 프랑스에서 2000년 발간된 이 책에서 작가는 1993년부터 1999년 사이 파리 수도권 고속 전철인 RER이나 거리에서 본 일과 신문이나 방송에서 접한 소식들에 대한 단상을 일기처럼 적어 내려갑니다. 냉철한 관찰자로서 나와 타인,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들춰냅니다.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오늘날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고약한 냄새"를 느끼며 기계적으로 성탄절 축복을 외친 자신이 부끄러워진 찰나를 포착한 내용처럼 말이지요. 오늘 하루 당신은 '밖의 삶' 중 어떤 장면을 현실에서 포착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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