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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명절 선물'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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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전해 주세요."
호기롭게 내뱉고 쪼잔하게 흔들립니다. 'XX백화점 선물 배송'을 제 몸에 새긴 휴대폰이 울 때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되뇌며 따라 울고 싶습니다. "OOO님이 추석 선물을 보낼 거니 집 주소를 알려달라"는 수화기 너머 친절한 부탁을 굳이 거절하는 인생관이라니. 유별나고 피곤하죠.
겉은 자긍의 호수요, 속은 번뇌의 늪입니다. '줄 만하니까 주겠지.' '실제 친한 분이잖아.' '남들도 받잖아.' '전엔 받았잖아.' '선물과 업무는 별개지.' 받으려고 마음먹으면 받을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여러 OOO님도 딱히 뭘 바라고 주려는 건 아닐 겁니다. 백화점 직원의 솔깃한 유혹은 전화를 끊은 뒤에도 심중을 헤집습니다. "번거로우시면 상품권으로 바꿔 드려요!"
"다른 분들은 상대 성의를 생각해서 다들 받으시는데 그런 부분도 고려해 보시죠." 순간 넘어가고픈 충동을 유발하는 저 제안은 여운까지 오래 남습니다. 받고 싶은 욕망, 사양해야 한다는 자존이 뒤엉키는 달뜬 체험을 이번 한가위까지 세 차례 겪었으나 평정은 아득합니다.
골치도 아픕니다. 예전 기록이 남았는지 10여 년 전 살던 집 주소로 보낸 선물을 반송해야 합니다. 직접 연락하거나 이메일을 보낸 분들에겐 무례로 비치지 않게 조곤조곤 설명합니다. '안물안궁' 부원들에겐 충무공을 변주합니다. "일이 급하다. 부디 내 주소를 말하지 말라."
명절 선물이라곤 아버지가 친척집에 갈 때 준비한 신문지로 돌돌 만 정육점 소고기 두 근, 신문지로 싼 과일가게 사과(배) 몇 알이 유년의 기억입니다. 취직 이후 연차가 쌓이면서 따라온 출입처의 명절 선물은 황송했습니다. 들으면 알 법한 장관, 위원장, 청장, 대표 이름이 인쇄된 오만 생필품에 신분 상승이라도 이룬 양 우쭐했습니다. 쓰레기로 버려질 포장재가 기형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이렇게 눙쳤습니다. "맙소사, 배보다 배꼽이 더 크구먼."
2016년 9월 '김영란법' 시행 즈음 관행에 취한 정신이 각성했습니다. 업무 연관성이 뚜렷하다면, 공과 사의 경계가 흐릿하다면 받지 않겠다고 칼럼(애들이 옳다)을 쓰며 다짐했습니다. 100%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그 반성이 다음 실천의 동력입니다. 경제부장에게 보내는 출입처의 선물은 개인이 아니라 직책을 향한다고 믿습니다. 직책으로 얽힌 인연, 물질이 개입하지 않아도 소중합니다.
체감 강도를 더하는 기후위기 시대, 명절 선물의 화려한 과대 포장 문제도 고민합니다. 친환경이라고 포장하지만 온갖 포장 재료는 결국 지구를 병들게 하는 쓰레기가 됩니다. 매번 단속과 쓰레기 처리에 돈과 인력을 투입하는 건 낭비입니다. 미래 세대에게 재앙입니다. 명절 특수의 경제적 효과는 대형 유통업체만 누리는 건 아닌지 따져 봅니다. 대통령의 명절 선물마저 중고 장터에 등장하는 세태는 '웃픕니다'. 이렇게 안 받을 이유도 나름 많습니다.
물론 가족, 친지, 친구끼리 나누는 명절 선물은 미풍양속입니다. 다만 기업, 기관의 명절 선물은 외부보다 내부에, 외부라면 소외되고 낮은 곳에 선사하길 앙망합니다. 선물의 값어치는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이 따습게 설파합니다. 먹어 봐서 아는데 참치랑 스팸은 땀 흘려 번 돈으로 사 먹는 게 더 맛있습니다. "지구를 사랑하니 마음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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