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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십 억 횡령사건에 포항시, 재발방지 외양간 고치기

입력
2023.10.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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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직원, 시 계좌를 개인통장처럼
시, 뒤늦게 예금계좌 전수 조사
가상계좌 등 임의출금 차단책도 마련
시의회, 조사위원회 구성하기로

포항시청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포항시청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 소유 땅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거액을 빼돌린 경북 포항시 공무원이 시청 계좌를 이용해 횡령한 것으로 드러나자, 포항시가 전 부서의 예금계좌를 조사하는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다. 포항시의회도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상파악과 함께 포항시의 환수조치 방안과 재발방지 대책을 살펴보기로 했다.

4일 포항시의회에 따르면 최근 포항시 재산관리 직원 A씨의 공금횡령 의혹과 관련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경찰이 A씨의 범행 수법과 횡령 금액 등을 수사하고 있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포항시의 회계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더구나 포항시의 환수조치 방안도 따져 물을 방침이다.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은 “5일 본회의를 열고 조사위원회 구성 방식을 논의한다”며 “경찰 수사와 별개로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횡령 의혹을 사는 공무원 A씨는 시 소유 부지를 매각할 때 포항시 명의의 여러 계좌를 이용해 돈을 빼돌렸다. 그는 우선 매각대금이 입금돼야 할 계좌가 적힌 고지서를 본래 금액보다 줄여 발부하고는, 매수자에게는 고지서에 적힌 계좌가 아닌 다른 포항시 계좌를 알려주고 실제 받아야 할 금액대로 돈을 받았다. 그리고는 매수자 대신 고지서에 적힌 계좌로 대금을 입금하고 차액을 가로챘다. 뿐만 아니라, 매매가 마무리됐는데도 매각이 취소돼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거짓 보고하고는 대금을 착복했다. 이같은 수법으로 사라진 돈은 3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A씨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A씨가 범행에 사용한 포항시 계좌는 각종 보상금이나 환급금 등을 잠시 넣어두는 용도로 개설돼 입출금이 비교적 용이하다. A씨는 5년 넘게 시 재산 처분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면서 여러 예금계좌를 관리해, 동료들이 그의 비위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항시는 뒤늦게 전 부서의 예금계좌 조사에 나섰다. 또 회계시스템을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가령 소액의 입찰 보증금도 출금이 안 되는 가상계좌를 이용해 받을 방침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전 부서의 별도계좌를 모두 조사하고 입금만 되고 출금은 안 되는 가상계좌가 부여된 고지서 납부를 원칙으로 세입처리 시스템을 개선한다”며 “회계 부정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횡령이 행정기관에서 흔히 사용하는 자유 입출금 계좌를 이용한 만큼, 경북도를 비롯해 자치단체마다 개설한 예금계좌를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는 2012년 여수시 공무원의 80억 횡령 사건으로 공금횡령 징후를 자동으로 포착하는 전산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이번 포항시 공무원의 횡령을 적발하지 못했다.

박희정 포항시의회 자치행정위원장은 “일선 시, 군마다 공사발주나 계약, 인허가 등을 담당하는 부서에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계좌가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행정안전부가 나서 자치단체의 재정관리시스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포항시 공무원 A씨는 경북도가 지난달 4~22일 실시한 포항시 종합감사에서 2021~2022년 포항시 소유 땅 27건을 매각하면서 감정평가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시에 납입한 사실이 적발됐다.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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