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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잘못 짚은 신냉전 세일즈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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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 동안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김정은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지 사흘 만에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세계 정치 지형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며 한껏 판을 키웠다. 근본적 변화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9월 26~27일 동안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9차회의에서는 핵무력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하는 10차 개헌을 단행했다. 동시에 사회주의 체제로의 한반도 통일을 의미하는 '영토 완정(完整)'도 다시 꺼내 들었다. 3년 8개월 만의 국경 개방, 정상외교의 재가동, 핵무력 헌법 개정 등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북한의 대외전략에서 김정은이 과시하는 자신감의 원천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김정은의 연설문에 드러난 '신냉전' 인식이다.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신냉전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이다. 미국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해였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하기 훨씬 전이었다. 김정은이 주장했던 신냉전의 근거는 '미국의 일방적이며 불공정한 편 가르기식 대외정책'이었다.
미국 대선 이전에 국내외 전문가들이 민주당 정부의 대중정책을 놓고 경쟁과 협력과 대립의 측면을 모두 예상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에 비하면 임기 초부터 가치와 인권을 앞세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외교는 분명 양국 간 전략 경쟁을 더욱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후 발표한 '잠정 국가안보 지침'에서 미국은 중국을 '경쟁자'로 지칭했고, 알래스카에서는 양국 고위급 접촉이 열려 서로의 의중을 탐색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국면에서 미중 경쟁이 신냉전으로 비화하는 데에는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었다.
오히려 마음이 급한 사람은 김정은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바뀔 조짐이 보이지 않자, 미중 전략경쟁을 일찌감치 '신냉전'으로 못 박아버림으로써 대외전략의 동력으로 삼고자 했을 것이다. 냉전 시기 김일성이 '반소친중'과 '친소반중'을 시계추처럼 오갔던 등거리외교의 추억 때문일 수도 있다. 이후에도 북한은 이러한 의도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2021년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구도로 변화되고 있다"던 김정은의 언급은 2022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신냉전 체제로 명백히 전환되었다"로 바뀌었다.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는 "전 지구적 범위에서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되었다"로 또다시 업그레이드되었다. 신냉전 구도로 인해 '주권국가들의 존립과 인민들의 생존권마저 위협당하고 있다'며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조차도 신냉전의 책임으로 돌렸다.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은 북한이 세일즈해온 신냉전 이미지의 값을 올리는 데는 깜짝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에서 꺼내든 '반미연대'라는 상품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것 같지는 않다. 북한으로서는 중북러 삼각연대로 한미일 공조에 맞서는 구도를 최상의 그림으로 삼고 있겠지만, 러시아와 북한이 벌여놓은 판에 중국이 뒤늦게 끌려 들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 중인 '신냉전' 담론에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고립된 국가의 지도자가 갖는 희망과 현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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