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국 영세기업으로 돌연 이직한 그룹장... 혹시 우회 취업?

입력
2023.10.03 14:24
수정
2023.10.03 14: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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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디스플레이 OLED 담당 직원
동종업계 금지 약정 후 소기업행
법원 "우회취업 의심, 전직 제한"

지난달 5일부터 10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3(옛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마련됐던 삼성디스플레이 전시장 내 OLED의 안전성을 체험할 수 있는 세이프 드라이빙 센터. 삼성전자 제공

지난달 5일부터 10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3(옛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마련됐던 삼성디스플레이 전시장 내 OLED의 안전성을 체험할 수 있는 세이프 드라이빙 센터. 삼성전자 제공

디스플레이 핵심 기술을 알고 있는 직원이 중국으로 직장을 옮기려는 경우, 중국 업체가 디스플레이와 상관 없는 회사라도 우회 취업이나 기술 유출이 의심된다면 이직을 제한할 수 있다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 박범석)는 7월 삼성디스플레이가 자사 직원이었던 김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2008년 9월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한 A씨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핵심 공정에서 그룹장(프로젝트 리더)까지 지낸 후 지난해 1월 퇴사했다. 퇴사 당시 그는 회사로부터 8,790여만 원을 받는 대신 "퇴직일로부터 2년간 국내·외 경쟁업체에 전직하지 않겠다"는 약정을 맺었다. 이후 A씨는 같은 해 8월 중국 광동성에 있는 레이저 의료기기 제조업체에 취직했다.

외견상 동종업계는 아니었지만, 삼성디스플레이는 A씨의 새 직장을 문제 삼았다. A씨가 취직하려는 회사가 실상은 의료기기 제조사가 아니라 디스플레이 경쟁사라는 이유였다. 회사가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자, A씨 측은 "전직 금지 약정 자체가 민법에 반하기 때문에 무효이고, 약정이 유효하더라도 경쟁사에 취업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삼성디스플레이와 경쟁업체 사이 세계 시장 점유율에 상당한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 유출 방지가 필요하다"며 전직 금지 약정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씨가 경쟁사에 우회취업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우회 취업 정황은 A씨가 가려는 새 직장의 상태에서 드러났다. 낡은 3층짜리 본사 건물에서 7명만 근무하고 있었고, 자본금은 약 19억 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에는 레이저 치료기기가 없었으며, 주력 상품은 프레스 기계와 생산 라인 부속품 등 공산품이었다. 재판부는 "A씨의 경력과 이전 급여 수준 등에 비춰 보면 삼성디스플레이를 그만두고 중국의 영세업체에 취업한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며 "A씨가 보유 기술과 무관한 회사에 취업한 이유도 수긍하기 어렵다"고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국 "A씨는 약정대로 내년 1월까지 우회 취업 등의 방법으로 OLED 방식 디스플레이의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며 "A씨가 이 명령을 어길 경우 삼성디스플레이에 1일당 5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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