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일가, 지분 3.6%로 그룹 지배... 해외법인 등 '우회로' 동원

입력
2023.10.03 14:00
수정
2023.10.03 14:0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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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대상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
지분 적은 총수 일가, 그룹 장악 여전
"이런 대기업 구조, 건전하지 않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뉴스1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뉴스1

대기업 정점에 있는 오너와 그 가족 등이 평균 지분 3.6%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 일가가 그룹을 장악할수록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반면, 잘못된 판단이 여러 계열사로 번질 수 있는 단점도 있다. 총수 일가가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위법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일 이런 내용의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을 발표했다. 올해 5월 기준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자산 5조 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82개(소속 회사 3,076개)의 내부지분율은 61.7%로 전년 대비 1.3%포인트 올랐다. 내부지분율은 총수, 친족, 계열사, 비영리법인, 임원 등이 보유한 주식 비율을 모두 더한 수치다.

총수 있는 집단 72개로 좁혀보면 내부지분율은 전년보다 1.3%포인트 증가한 61.2%로 처음 60%대를 넘었다. 통상 내부지분율은 책임 경영의 척도로 받아들여진다. 총수와 그 관련 인물·기업이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주가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그룹 경영도 잘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내부지분율 60%대 돌파를 긍정 평가하기만은 어렵다. 다른 책임경영 기준인 총수 일가의 이사 등재 회사 비율은 지난해 14.5%로 전년 대비 0.7%포인트 감소했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가 그룹에서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서울 도심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도심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총수 일가가 작은 지분율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현상은 여전했다. 총수 있는 대기업에서 총수 일가 지분율은 3.6%로 전년과 비교해 0.1%포인트 줄었다. 총수 일가가 이 정도 지분으로 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비밀은 계열사를 통한 지분율 확장이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큰 지주사가 계열사 주식을 대량 보유하는 식이다.

국내 계열사 대신 국외 계열사, 공익법인 등 우회로를 활용해 그룹 지배력을 높인 경우도 상당수 있다. 예컨대 롯데는 신동빈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지분 99.6%를 갖고 있는 일본법인 광윤사를 거쳐 롯데알미늄, 호텔롯데, 부산롯데호텔 등 국내 계열사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이런 구조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적 방식으로, 지배력을 확대할 때 감시망에 포착되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총수 일가 지배력이 크면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총수 중심으로 굴러가는 삼성전자, SK, 현대차, LG 등 주요 대기업을 떠올리면 알기 쉽다. 하지만 의사 결정 권한이 총수 일가로 쏠릴수록 부작용이 생길 여지가 있다. 총수 일가가 경영을 잘 못하더라도 견제·감시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어서다.

또 지분율 확대를 노리는 총수 일가가 불법에 빠질 수도 있다.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던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부당 이익을 챙긴 한국타이어 총수 일가가 한 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책국장은 "지분을 소유한 만큼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 우리 대기업 구조는 건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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