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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민심 르포]"민생고에 마이 돌아섰습니더... 홍범도 논란 보면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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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민심에는 여론이 응축돼 있다. 특히 이듬해 선거를 앞둔 추석 민심은 승패의 가늠자 역할을 해왔다. 이에 부산과 광주를 찾아 영호남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내년 총선은 이제 6개월 남았다.
"우리 기사들 다 윤석열 찍었는데 마이 돌아섰습니더. 30%만 민주당 표였는데, 아들 얘기 들어보면 이젠 5대 5임더. 민생은 안 돌보고 이재매이(이재명)만 조 잡을라 하니 힘들지요. 나는 이제 TV에 대통령 나오면 꺼버리라 캅니다."
추석 황금연휴 막바지인 2일 부산역 앞 택시 승강장. 손님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 있던 기사들에게 '총선 민심'을 묻자 이들 중 '회장'이라는 강모(77)씨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옆에 서 있던 다른 기사도 "차 타는 손님마다 경기가 힘들다 안캅니까. 민심이 순순치는 않은 것 같지요"라며 거들었다.
지난 대선에서 'TK(대구·경북)' 다음으로 높은 득표율(58.3%)을 윤석열 대통령에 안겨준 부산치고는 첫인상이 꽤나 야박했다.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이 강세를 보인 곳인데도 가차없었다. "밀어줄 땐 밀어줘도, 못한다 싶으면 바로 짐 싸서 떠날 수 있는 긴장감 있는 지역이 됐다"는 정치권의 냉혹한 평가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반응이 싸늘할까. 부산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국제시장을 찾았다. 추석 명절 시장 민심을 좌우한 건 '먹고사는 문제'였다. 상인들은 "코로나19는 갔지만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철물점을 운영하는 김모(55)씨는 "개인적으로 윤 대통령을 좋아하고 우크라 전쟁 여파로 원자잿값이 오르는 등 대외 상황이 나쁜 것도 백번 이해하지만, 일선 서민들은 당장 배곯면 나라님부터 밉기 마련"이라며 "경제만 좀 살려도 확실한 지지를 얻을 텐데 마땅한 탈출구가 없는 상황"이라고 촌평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부산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어민·수산업자가 많은데, 오염수로 인해 시민들의 체감 경기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건어물을 주로 취급하는 상인 김모(43)씨는 "추석에 보통 선물과 제수용품 수요가 늘어 '명절 특수'가 있기 마련인데 이번엔 일찍이 반토막 난 평시 수준에 그쳤다. 심리적 영향이 큰 듯하다"면서 "이렇게 힘든데 뉴스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같은 걸 놓고 핏대를 세우는 걸 볼 땐 '저게 저리 중요한가' 답답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불경기를 모두 현 정부 탓으로 돌리는 건 무리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시민 정모(52)씨는 "문재인 정부 시절 돈을 마구 풀어대서 나라 곳간이 텅 빌 판이었는데, 윤 대통령이 긴축재정을 택한 건 인기에 연연하지 않은 '대국적 결단'이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시장 초입에서 50년 가까이 횟집을 운영했다는 백모(68)씨는 "정부·여당이 뭘 해보려 해도 야당이 일단 반대 깃발부터 들고 나선 것도 사실이니, 경제 한번 살려보란 의미에서 이번엔 여당을 밀어주려 한다"며 "외교에선 이미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고 부산의 미래가 걸린 엑스포 유치에도 발로 뛰며 힘써줬듯이 경제도 여건만 갖춰지면 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부산 최대 번화가인 부산진구 서면 일대로 자리를 옮겼다. 거리는 젊은 활력으로 가득 찼지만 대부분의 행인들은 정치에 대한 염증 때문인 듯 현안에 대해 말을 꺼내길 주저했다. 다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둘러싼 논란은 '정국의 블랙홀'로 불리며 최근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워낙 큰 사안이다보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고 정치적 견해를 밝혔다.
자영업자인 30대 남성은 "이 대표가 영장 기각 직후 자신이 무슨 억울하게 수감됐다 막 풀려난 DJ(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인터뷰를 하던데, 구속의 필요성이 충분치 않다는 것뿐이지 자신을 둘러싼 혐의들이 사라진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 "야당도 체포동의안 포기 약속을 어기고 민생도 버린 채 당대표 방탄에만 집중했다는 인상을 도저히 지울 수 없어 표를 주긴 어려울 것 같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반면 직장인 김모(30)씨는 "정치인은 여야 안 가리고 '털어서 죄 없을 사람은 없다'는데 대통령이 바뀌고 야당 대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데는 정적을 찍어 누르려는 정치적 의도가 어느 정도 섞여 있지 않을까 싶긴 했다"며 "그렇게 긴가민가한 와중에 영장이 기각되니 대통령이 '정치 탄압'을 했다는 인상이 더 강해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 대표가 구속을 면한 만큼 명절 이후에는 정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여야가 서로 진정성 있는 소통과 민생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전국지표조사(9월 25~27일·18세 이상 남녀 1,002명 대상)에서 응답자들은 윤 대통령이 가장 잘못하는 점으로 '독단적이고 일방적임(20%)'이라고 꼽았다.
대학생 전모(24)씨는 "이번 대통령과 야당이 협치 없이 싸움만 하는 게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하는데, 영수회담이 됐든 당대표 회담이 됐든 먼저 소통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면 무당층의 마음을 선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다만 "지금까지 보여준 게 있다 보니 대선부터 시작된 '비호감 대결'이 쉽게 끝날 거라는 기대는 안 한다"며 냉소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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