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세상 언어들의 이모저모를 맛보는 어도락가(語道樂家)가 말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틈새를 이곳저곳 들춘다. 재미있을 법한 말맛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며 숨겨진 의미도 음미한다.
흔히들 말하듯 가을은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다. 언제든 읽을 수 있으니 딱히 철을 따질 까닭은 없으나 그래도 가을과 책은 궁합이 잘 맞는다. 우리가 읽는 책은 상당수가 번역서다. 번역이 없다면 읽을 책도 대폭 줄어들 것이다. 그만큼 번역이 인류 문화 창달에 끼치는 업적은 지대하다. 며칠 전 9월 30일은 국제 번역가 협회에서 정한 세계 번역의 날이다. 번역 문화 역시 아직은 서구 문명이 주도하고 있기에 기독교가 확고히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라틴어 불가타역 성경을 번역한 히에로니무스(성 예로니모)가 태어난 날을 세계 번역의 날로 정했다. 이참에 번역의 문화사적 의의를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번역과 통역은 자기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과 만나면서부터 시작됐으니 인류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주로 학자, 성직자, 작가 등 전통적인 지식인이 번역을 담당했으며 통역은 주로 상인이나 외교관이 맡았지 이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회의통역 및 동시통역의 토대가 마련되고 각종 국제기구 창설 및 무역, 교통, 통신, 미디어 등의 폭발적인 발전으로 통역과 번역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탄생했다.
인류사에서 번역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슬람 문명은 10세기 무렵부터 그리스어로 된 많은 철학과 과학 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했고 서구에서는 아랍어로부터 다시 라틴어로 번역해 그리스 문명을 재발견하면서 르네상스가 촉발돼 서구 근대 문명의 밑바탕이 되었다. 일본은 서구 접촉 이후 네덜란드어 서적 번역을 시작으로 난학(蘭學)을 발전시켜 근대화의 주춧돌을 세웠고 이후에도 영어와 독일어를 비롯한 서양어의 번역을 통해 일본에서 한자어로 번역한 수많은 어휘가 한국과 중국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경전이나 시가의 번역이 있었고 조선 중기부터 점점 한글이 널리 쓰이게 됐지만 지식층은 여전히 한문을 고수했다. 19세기부터 일본어 등을 통한 중역을 비롯해 서구 언어를 번역한 경우도 있었으나 일본에 강점당하고 해방 뒤에는 6·25전쟁 등 혼란을 겪어 사실상 따지고 보면 제대로 문자 생활 자체가 뿌리내린 지는 이제 겨우 일흔 해를 넘긴 터라서 본격적인 번역의 역사도 그만큼 짧은 셈이다.
우리말에 가장 알맞은 훌륭한 글자를 만들어 놓고도 번역을 통해 서양이나 일본처럼 민중어의 확산과 지식의 보급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해 근대화에 한발 늦을 수밖에 없었으니 참으로 아쉽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서의 라틴어 번역과 종교개혁을 전후한 민중어 번역, 이슬람권에서 이뤄진 그리스어의 아랍어 번역, 르네상스 시대의 이슬람을 통한 그리스 문화의 재발견, 동아시아 근대화를 이끈 일본의 번역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세상은 엄청나게 다른 모습이었을 테고 좋든 나쁘든 적어도 지금 같은 문명은 아직 오지 않았으리라.
이만큼 역사 속에서 번역은 중요한 일이기에 번역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크게 움직였다. 물론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 속에서 방대한 지식의 바다 한가운데에 던져진 개개인이 다 이런 거창한 역사적 사명감을 띠고 살기는 어렵다. 다만 번역의 날을 디딤돌로 삼아 우리 모두가 세계 주요 언어와 견주어 걸음마 단계를 좀 지난 우리의 언어문화와 지식을 풍성하게 가꾸고 번역가들도 여러 문화를 이어 주는 막대한 임무를 몸소 느끼며 더더욱 긍지를 갖고 일한다면 더 훌륭한 번역을 독자들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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