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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코뿔소에 대응하는 K농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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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것이 연결된 거대한 생태계에 살고 있다. 브라질 나비의 평화로운 날갯짓이 미국을 강타하는 토네이도가 되는 것처럼 하나의 사건이 시공을 달려 우리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위협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글로벌 식량 위기를 초래한 것처럼 말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농정 발전계획 주요 과제에 '식량안보 확보'라는 묵직한 키워드가 자리했다. 치솟던 국제 곡물가격이 한풀 꺾이긴 했지만, 위기의 원인이었던 전쟁과 기후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유비무환의 자세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식량 위기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지만 애써 무시하는 '회색 코뿔소'의 위험과 닮아 있다. 식량안보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가치이지만 막연한 낙관으로 위기의 심각성을 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위협 요소가 몸집을 더 키우기 전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세계를 위협했던 글로벌 식량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식량 자급률 제고와 국가 곡물 조달 시스템의 안정화가 추진되고 있다. 곡물 조달 역량 강화를 위해 정부는 민간기업의 해외공급망 확보 지원을 약속했으며, 최근 발표한 '제4차 해외농업자원개발 종합계획'에는 개발지역의 다변화와 함께 해외농업 진출기업에 대한 지원을 국제농업협력(ODA) 사업 및 해외농업자원개발 사업과 연계해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해외농업 개발을 통해 주요 곡물 및 수입 의존도가 높은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은 식량안보를 굳건히 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시간과 재원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경지면적과 농업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식량자급률 제고만으로는 심각한 위기 상황을 감당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ODA 사업은 기후위기 대응과 식량 자급이 어려운 국가들의 희망이자 우리 농산업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다. 한국의 선진 농업기술을 해외에 전수하는 과정에서 민간기업의 해외 진출 기반과 수출 거점이 마련되고, 수혜국의 농업·농촌 발전과 함께 K농업의 위상과 국가 이미지 제고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지난 7월, 농식품부는 ODA 사업의 일환인 'K-라이스 벨트'를 통해 아프리카 8개국을 대상으로 한국의 농업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기로 했다. 아프리카에 다수확 벼 종자 생산단지와 재배 인프라, 보급체계를 구축하고 2027년부터 해마다 1만 톤의 벼 종자를 생산해 연 3,000만 명에게 안정적인 식량을 공급하려는 계획이다. 이번 사업의 목표는 당장의 식량난 해소에 그치지 않는다. 농약, 비료, 포장재 등 투입재 업종과 이앙기, 탈곡기, 정미기 등 농기계 업종의 사업 참여를 통해 수원국의 농업 발전을 돕고, 향후 전후방 K농산업의 해외 진출 교두보를 만든다는 장기적 목표도 있다.
이처럼 일거다득의 효과가 기대되는 해외농업을 내실 있게 추진해 나가려면 범정부 차원의 밀도 있는 정책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기업들이 해외사업 추진 중에 직면할 수 있는 법률문제에 대한 대응책과 행정지원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회색 코뿔소가 곳곳에 자리한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구성원들이 더 많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혼자서 앞만 보며 내달리는 질주 대신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함께 걷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경험과 기술력을 해외 여러 나라와 함께 나누려는 선한 노력이 우리나라의 식량주권 강화와 K농산업의 해외진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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