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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상식‘에서 ’자유·이념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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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시작이 너무나 강렬했다. ‘윤석열’이라는 대통령 이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상징은 ‘공정과 상식’으로 출발했다.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경선에서 승리한 당시 윤 전 검찰총장은 대선 후보수락 연설에서 “조국의 위선, 추미애의 오만을 무너뜨린 공정의 상징”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은 이제 한 개인이 아니라 공정과 정의의 회복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됐다”고 선언했다. 한국 정치사에 이처럼 극적으로 대통령이 탄생하기는 흔치 않다. 민심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민주화 달성 이후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검찰개혁’이었지만 권력의 자의적 행사로 빛이 바랬고 그렇게 문재인 정부는 추락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키워드는 취임사부터 무게중심이 바뀐다. ‘자유’의 등장이다.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면서 국정철학이 “자유의 가치 재발견”으로 채워졌다. 그에 앞서 대선 기간에 배우자 리스크가 시험대에 올랐다. 허위경력 기재 논란 등으로 대국민사과를 하는 사태를 야기했다. 새 정부 출범 후 계속 불거진 대통령 주변 리스크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공정’의 가치가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윤 정부의 핵심 브랜드가 휘청대면서 공정이란 단어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국정성과를 돌아보면 단연 한일관계 복원을 꼽을 수 있다. 무서운 추진력으로 이전 정부의 ‘반일몰이’ 폐해를 일거에 해소했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3·1절 기념사에서 “세계사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라는 대목은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일치한다. 제국주의 힘의 논리를 숭상하는 극우적 인식이 대통령 연설에 담기자 뉴라이트 세계관과 흡사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으로 촉발된 이념전쟁 드라이브가 향후 건국절 논쟁이나 역사교과서 문제로 비화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이는 지지율을 40%대 이상 끌어올리는 데 한계로 작용할 것이다. 내용이 국민적 자존심을 건드려서다. 일례로 1948년 건국절을 강조하는 보수진영에선 1919년 임시정부에 영토, 주권, 국민이 어디 있었냐고 비아냥댄다. 이런 형식논리가 대한민국의 시작과 정통성을 임시정부에서 찾겠다는 공동체 의지에 비할 바인지 난센스다. 그런 패배주의적 시각이라면 안중근 의사도 테러리스트가 된다. 뤼순 법정에서 안 의사는 자신이 개인 자격으로 남을 죽인 범죄인이 아니며 대한의군(항일의병) 참모중장으로서 국제법상 전쟁 중 교전 자격자의 정당행위라 당당히 주장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윤 대통령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문구는 없을 것이다.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던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했던 말이다. 그해 4월부터 약 6개월간 국정원의 대선개입 댓글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이끈 윤 대통령은 국정원 직원들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체포했다. 수사를 멈추라는 검찰수뇌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이후 수사팀에서 배제돼 1개월 정직 징계를 받았고, 대구고검 등으로 좌천됐다.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수사개입에 맞서 국민적 인기가 올라간 그때의 ‘검사 윤석열’을 지금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명’ 논란에서 떠올린다. 윗선 개입에 저항한 수사책임자에게 보복성 처벌이란 얼개가 똑같아 지켜보기가 당혹스럽다.
지난 1년 5개월을 돌아보며 ‘추석 구상’에 들어갈 윤 대통령이 하반기 파격적인 국정쇄신책을 들고 나오길 기대한다. 구속 리스크를 피한 ‘이재명 민주당’과 마이너스 경쟁에 안주할 거라면 국민의 기대치는 내려간다. 국민은 윤 대통령의 호쾌한 ‘어퍼컷 세리머니’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초심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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