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교사 인정되나 증거인멸 우려 없다?... 892자 장문의 기각사유 보니

입력
2023.09.27 19:10
수정
2023.09.27 19:4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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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영장 기각 사유로 본 검찰수사]
기각 사유에 3개 혐의 별도로 따져서 적시
주된 이유는 '이재명 직접 개입 증거 부족'

백현동 개발 특혜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구속영장이 기각된 27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백현동 개발 특혜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구속영장이 기각된 27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법원이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내세운 핵심 중 하나는 '직접 증거 부족'이었다. 일부 소명됐다고 판단한 혐의가 있었지만, 다른 혐의 부분에선 이 대표 개입 정황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불구속수사의 대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검찰이 이 대표의 증거인멸 시도로 내세운 증거들까지 모두 '의심스러운 정황'에 그친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검찰은 향후 수사·재판에서 이 대표 혐의를 보다 명확히 입증할 증거를 보강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혐의별로 따로 판단할 수 있나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총 892자에 이르는 이례적인 장문의 사유를 밝히며 두 가지 구속 요건(①혐의 소명 ②증거인멸 염려)을 △위증교사 △백현동 △대북송금 세 가지 사안에 각각 적용해 판단했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 중 소명된 것은 '위증교사'가 전부였다. 유 부장판사는 백현동 개발 의혹 쪽에서는 "이 대표 관여의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고, 대북송금에 대해서도 "이 대표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유 부장판사가 세 사건을 분리 판단한 것에 대해,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혐의 간 명확한 연결고리가 없는 이상 소명 여부도 따로 보는 게 원칙에 맞다"며 "'위증교사한 자의 습성'이 개별 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를 통해 "(백현동 사업 관련) 이 대표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적절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짚었는데, 이 점에서 검찰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용도변경 등 문서에 있는 이 대표 직인과 담당 공무원들의 명확한 법정 증언, 특혜가 임의로 제공될 수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법원 판단은 수사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날을 세웠다.

법관들이 영장 발부·기각 사유에 쓰는 표현에 매우 익숙한 수도권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각 사안별로 혐의 입증 정도가 달랐을 수 있다는 관전평을 내놓았다. 그는 "백현동 사건에서 의심이 든다는 표현은 기록을 충분히 봤다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라며 "오히려 그런 표현조차 없는 대북송금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혐의가 소명됐다고 구속 요건으로 바로 연결지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혐의 판단은 전제일 뿐, 구속 필요성을 고려할 때는 증거 인멸이나 도망 우려 등이 실질적 기준이라는 뜻이다.

증거인멸 우려 주장했지만...

또다른 구속 요건인 증거인멸 우려 역시 대체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검찰은 이 대표의 증거인멸 시도의 대표 사례로 대북송금 의혹 관련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진술 번복을 내세웠다.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일 뿐 개입을 단정할 수는 없다고 물리쳤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진술 번복 경위를 두고 검찰은 피의자 측 개입을, 피의자는 애초 검찰 강압 수사를 주장하는 상황"이라며 "직접 증거가 없는 이상 이는 결국 다툼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다툼이 있는 사건에서 법관이 구속영장을 발부하기는 쉽지 않다.

유 부장판사는 또, 이 대표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도 증거인멸 우려가 낮은 이유로 봤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이 대표는 경기지사 시절 증거인멸을 현실화했고, 본건 수사 과정에서도 담당 공무원을 회유한 정황이 확인됐다"며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적시한 부분에는 정치적 고려가 있어 보인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위가 높은 공적 인물의 증거인멸 우려가 낮다고 본 판단도 논란이다. 2018년 3월 서울중앙지법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피의자의 지위, 범죄의 중대성 및 이 사건 수사과정에 나타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사유를 밝혔다. 공적 감시 대상이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말도 성립하지만, 반대로 지위가 높은 인물이 자기 영향력을 통해 증거를 없애려 하는 일도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원 기자
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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