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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뚱뚱할 수 없는 유전자 가진 인류, 지금은 '비만'과의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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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 역시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정립됐습니다. 어려운 경제학을 익숙한 세계사 속 인물, 사건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으로 근무하는 조원경 교수가 들려주는 ‘세계사로 읽는 경제’는 3주에 한 번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이면 통상 비만이라 불린다. BMI는 근육량, 유전적 원인, 개인적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비만을 일으키는 요인 세 가지를 통해 비만의 세계사를 훑어봤다.
우선, 유전자이다. 우리 몸 안의 비만 유전자를 제공한 역사 속 주인공은 누구일까? 202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탄 스웨덴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는 그 열쇠를 푸는 데 일조했다. 그는 고대 인류의 유전체에서 현대인과의 연결 관계를 연구해 인류의 진화 과정을 찾아냈다. 그와 같은 과학자들은 비만에 관여하는 유전자 400여 개를 발견했다. 체지방을 증가하는 데 큰 영향을 주는 지방축적조절 유전자(FTO)가 대표적이다. 비만 유전자의 기원은 페보의 주장처럼 3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수렵과 사냥을 통해 간헐적으로 음식을 섭취했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몸속에 지방을 저장하고 생존해야만 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 98% 이상과 2% 미만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합쳐져 현생 인류의 DNA를 구성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우리 인체가 유전적으로 당분을 흡수하는 데 호의적이지 않게 설계됐음을 말한다. 유전자의 영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버드대 의대 자료는 비만이 적게는 25%, 많게는 70~80%의 유전자가 원인이라고 구분한다.
둘째는 식생활 환경 문제다. 현대인은 필요한 것보다 많은 칼로리를 섭취한다. 거리에 널려 있는 패스트푸드는 칼로리는 높지만 건강과 영양에는 별로인 음식이다. 당분은 탄수화물의 일종으로 몸의 중요 에너지원이다. 당류를 과잉 섭취하면 지방축적으로 비만의 위험도가 1.39배 높아진다.
사탕수수와 사탕무에서 파생된 설탕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열대나 아열대 기후에서 사는 식물인 사탕수수는 처음에는 뉴기니 섬에서 재배했다. 이후 십자군 원정으로 인도를 거쳐 이슬람과 유럽에 전해졌다. 토질을 황폐화하는 사탕수수를 계속 구하기 위해서는 재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포르투갈인은 동방항로 개척으로 사탕수수 경작지를 서쪽으로 줄곧 이동했다. 16세기 포르투갈은 사탕수수 재배지로 지금의 브라질을 선택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설탕은 감기나 결핵을 치료하는 효능의 약재였다. 16세기 유럽은 부와 권력을 뽐내기 위해 설탕을 사치재로도 소비했다. 과시하기 좋아한 귀족의 성향으로 마침내 설탕은 홍차와 만난다. 부와 권력을 가늠하는 척도인 '귀족 식품'으로 권세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커피를 팔다 홍차가 주메뉴가 된 커피하우스를 통해 유럽의 근대 문화와 정치가 발달했다.
17세기엔 설탕이 대중에게 보급된 이후 세계 상품이라는 망토를 둘렀다. 상권을 장악한 네덜란드인이 주축이 돼 카리브해에 대규모 사탕수수 재배농장을 만들었다. 원래의 카리브해 섬들은 기본적인 생산 활동이 없는 해적 소굴이었다. 설탕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카리브해 섬에서 사탕수수 재배가 시작됐다. 온 섬이 사탕수수밭으로 변모했다. 유럽인들은 플랜테이션으로 불리는 농장 개발에 많은 흑인 노예를 유입시켰다. 이 플랜테이션에 영국의 자본 유입이 한몫했다. 수십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와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제국주의 번성은 설탕을 위한 탐욕에 바탕을 둔 셈이다.
사탕수수 재배로 카리브해의 섬 풍경과 거주민 구성은 확 달라졌다. 원래 살던 원주민은 거의 다 소멸했다. 섬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가 인구 대부분을 차지했다. 극소수 백인 감독자 아래 다수 흑인 노예들이 강제 노동을 하며 살았다. 이때 잡혀 온 흑인이 미주 대륙 흑인의 조상이다. 사탕수수가 있는 곳에는 노예의 흔적이 있다. 사람을 사냥해 판매하는 노예무역은 잔혹한 역사의 증거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간의 삼각무역으로 유럽이 엄청난 이익을 거뒀다.
21세기에 설탕은 너무 흔하다. 설탕이 우리나라 대중 식탁에 오른 것은 1950년대 중반 제당 공장이 설립된 이후부터다. 소수 상류 계층만 누리던 순백의 단맛을 누구나가 누리게 됐다. 우리는 이제 당분을 과하게 접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비만의 세 번째 원인은 현대인의 만성적 운동 부족이다. 앉아서 하는 일이 보편화돼 발생한 문제다. 일반적인 성인 대사질환의 사례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복부비만이 꼽힌다.
세계 비만 인구(성인 기준)가 2030년에 10억 명으로 추정된다. 2010년 5억 명의 두 배다.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비만 유전자는 이제 만병의 근원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6년부터 비만을 치료할 질병으로 규정했다. 비만은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불려왔다. 세계는 어느새 기아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보다 비만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게 흘러가고 있다.
2011년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은 전 세계 비만 인구수가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기아 인구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2010년 지구촌 인구 가운데 약 20%가 비만 인구였다.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는 기아자 15%를 웃돌았다. 자유로운 시장의 힘이 상호 작용한 결과였지만, 연맹은 이를 두고 “뭔가 일이 잘못돼가고 있다”고 논평했다.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 질환은 심혈관질환이다. 대표적인 예는 혈관에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결국 막히는 동맥경화가 있다.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금연과 비만 예방이 손꼽힌다. 당뇨가 있으면 생활요법과 약물치료로 혈당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사망 원인 1위가 암이고 2위가 심혈관질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6년 ‘글로벌 식품 및 농업을 위한 대안적 미래’라는 보고서를 냈다. 고지방 음식과 정크푸드 같은 유해음식에 세금을 부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전에 이러한 움직임에 가세한 국가들이 있었다. 헝가리는 2011년 9월부터 청량음료·에너지음료, 설탕과 소금이 많이 들어간 식품에 부가세를 매겼다. 당시 헝가리 정부는 이 비만세를 햄버거세로 이름을 붙였다. 업계 로비가 들어오자 튀김과자세로, 최종적으로는 포장식품세로 바꿨다. OECD 권고 이전부터 세계 각국은 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덴마크는 포화지방과 청량음료를 대상으로, 프랑스는 청량음료에 소비세나 관세를 추가 부과했다. OECD 권고 이후 필라델피아 시의회가 소다(청량음료)세를 통과했다. 이전에는 버클리시만이 소다세를 부과했다. 남인도 케랄라주도 인도 최초로 정크푸드에 비만세를 2016년 8월 도입했다.
올해 미국 주식시장을 달군 테마는 인공지능과 비만이다. 그 배경에 엔비디아와 제약회사 일라이릴리가 있다. 세계 시가총액 10위 기업이 된 일라이릴리의 적수는 놀랍게도 덴마크 기업 노보노디스크다. 릴리는 비만에서 앞서가고 있는 노보노디스크를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노보노디스크의 주사형 비만 치료제 위고비 신드롬이 파장을 일으켰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도 체중 감량 비결로 이 약을 소개했다. 세계적으로 처방전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품귀현상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데 돈푼깨나 있는 사람에겐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인류는 지금 기아와 비만과의 힘겨운 전쟁을 하고 있다. 그건 불평등의 다른 모습이다.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햄버거 가격도 상승해 점심 한 끼 때우는 것도 서민에겐 부담이다. 그런 가운데 현대인의 비만 관련 의료비 지출은 늘어만 간다. 정부는 비만으로 증가하는 의료보험 재정 부담에 긴 한숨을 쉰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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