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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빼돌린 포항시청 공무원, 시청 계좌를 개인 계좌처럼 썼다

입력
2023.09.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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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시 감사·5월 정부감사 적발 안 돼
비리 포착한 경북도 7년 만에 늑장감사

포항시청사. 포항=김정혜기자

포항시청사. 포항=김정혜기자

시유지 매각 과정에서 거액의 나랏돈을 가로챈 혐의(업무상 횡령)로 구속된 경북 포항시 공무원이 시청 명의 계좌를 개인 통장처럼 쓰며 돈을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공무원은 올해 시청 내부감사와 정부 종합감사를 받았음에도 범죄 사실이 적발되지 않았다. 경북도가 이번에 비위를 포착하기는 했지만, 통상 3년마다 해 오던 감사를 7년 만에 실시하는 바람에 횡령 행위를 뒤늦게 포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횡령 의혹이 제기된 포항시 공무원 A씨는 시유지를 팔아 대금을 받는 과정에 포항시청 은행계좌 중 입출금이 비교적 자유로운 계좌를 이용했다. 해당 계좌는 보상금이나 환급금 등을 잠시 넣어두는 용도로 개설한 계좌로 알려졌다. 포항시는 A씨가 입출금이 자유로운 이 계좌로 대금을 받아 돈을 빼돌린 뒤, 본래 대금을 넣어야 하는 계좌로 이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청 조사 결과 2021년 남구 이동 소재 땅 8곳을 팔았을 때 대금 원래대로라면 21억5,500만 원을 받아야 했지만, 통장에는 7억1,900만 원 적은 14억3,600만 원만 들어왔다. 지난해 남구 송도동 땅 17곳을 팔았을 때도 원래는 16억5,600만 원이 입금돼야 했지만, 실제론 5억9,100만 원 적은 10억6,500만 원이 이체돼 있었다. A씨가 빼돌린 시 소유 자금이 13억 원에 이르는 것이다.

A씨가 포항시 계좌를 개인 통장처럼 이용해 돈을 빼돌리는 동안에도, 매수자나 동료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한 매수자는 “시유지 매각 대금을 횡령했다고 해 이체내역을 다시 살펴봤는데 포항시 계좌로 돈을 보낸 게 틀림없었다”며 “입금 당시에도 확인을 거쳤다”고 말했다. 포항시 한 직원도 “입출금이 용이한 부서의 별도계좌라 하더라도 개인이 사용하는 은행계좌만큼 쉽게 돈을 뺄 수 없어 동료들도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A씨가 속한 부서는 올해 2월 포항시가 3년마다 실시하는 자체종합감사를 받았고, 5월에는 정부합동감사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감사가 허술했다는 결론이다. 경북도 역시 원래는 3년마다 포항시를 감사해야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태풍·지진 등을 이유로 7년 만에 감사를 실시해 뒤늦게 A씨의 비위를 발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도 관계자는 “2019년과 2022년에 감사를 해야 했는데, 포항에 재난사고가 많아 미뤄졌다”며 “이번 횡령을 계기로 다른 자치단체도 보다 철저히 감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포항=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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