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 다시 접경지역 휘날리나... 헌재, 금지법 위헌 결정

입력
2023.09.26 17:45
수정
2023.09.26 18:3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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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발전법 '전단 살포 금지' 위헌
"표현의 자유를 매우 과도하게 침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심판 선고에 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심판 선고에 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북한 쪽으로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법안이 통과된 지 3년 만이다.

헌재는 26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등 단체들이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문제 조항은 남북관계발전법 제24조. 2020년 민주당의 주도로 신설된 이 조항은 ①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 ②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시각매개물 게시 ③전단 등 살포를 통해, 국민의 생명 및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행위들을 '남북합의서 위반행위'로 규정해, 위반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개정안이 공포된 날 한변과 북한인권단체 20여곳은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제한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번에 위헌이 나온 부분은 이 중에서도 전단을 금지한 제24조 1항 3호다. 헌재는 "해당 법조항이 제한하는 표현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고,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할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헌재는 남북관계발전법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봤다. 상시 긴장상태인 북한 접경지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할 국가 의무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경고와 제지 등 유연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국가형벌권을 동원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된다"고 결론내렸다. 또 해당 조항이 "북한의 도발로 인한 책임을 전단 살포 행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책임주의의 원칙(행위자에게 비난가능성이 없다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보호할 더 적절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반대의견을 냈다. 김 재판관 등은 "경찰관 직무집행법만으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고, 살포 전 신고 의무 부과는 심판대상 조항과 동등한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해당 조항은 표현의 방법만을 제한하고 있고, 청구인들의 견해는 전단 살포 외의 기자회견이나 탈북자들과의 만남 등 다른 방식을 통해서도 충분히 표명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북 전단 금지 조항이 위헌으로 결론 나면서, 정부는 이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처리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지난해 11월 헌재에 "(해당 조항은) 표현의 자유 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최근 "(대북 전단을 금지하는) 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4년 10월 대북 전단이 든 풍선을 향해 북한이 고사총을 발사하는 등 전단 살포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보수·탈북자 단체의 전단 살포가 재개되는 경우 남북 관계의 경색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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