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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난독증...김신영 "사연 읽는 것도 공개방송도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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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SBS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타 데뷔한 김신영은 20년 동안 서민의 삶을 깊숙이 횡단했다.
"불백 하나에 찌개백반, 똑같은 걸로 통일하란 말이야!" "언니가 해초 마사지를 안 하는 이상은~". 카메라가 켜지면 그는 성질 급한 백반집 식당 아주머니나 '닳고 닳은' 목욕탕 세신사로 돌변했다. 관찰을 통한 생생한 인물 재현은 그의 특기였다. "'살아봐라 이런 찌개가 맵겠냐 인생이 맵겠냐'고 하시는데 그런 게 명언이잖아요. 그 말맛에 빠져 일부러 장터 식당을 가는 거죠."
김신영은 '웃찾사' 코너 '행님아'(2004)에서 통통한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아이로 나와 인기를 누렸다. 그 이후 예능프로그램 '무한걸스'에서 다양한 캐릭터 변주로 웃음을 준 그는 그룹 셀럽파이브와 '다비 이모' 등의 '부캐'를 기획해 연달아 흥행시켰다. 데뷔 후 무명 시절 없이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2012년 위기가 찾아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갑자기 숨이 찼다. 그는 꼬박 석 달을 집에만 있었다. 공황장애였다.
-왜 마음의 병이 찾아왔을까.
"아직도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불안감도 높았고, 완벽주의 성향도 강했다. 우울증은 내일이 안 보일 때, 공황장애는 내일이 겁나는 사람들에게 온다고 하더라. 엘리베이터도 못 탔다. 집에서 칩거했고.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 집에만 있다 보니 그때 생긴 취미가 레고 조립과 블록쌓기다."
-라디오 방송도 처음 할 때 고생했다고 들었다.
"정선희 선배가 '정오의 희망곡' 할 때 고정 코너를 맡은 홍경민 오빠 대타로 한 달을 맡았다. 사연을 다 읽어야 하는데 못 읽었다. 난독증 같은 게 있었다. 내 얘기는 쉽게 할 수 있는데 정적 가운데 누가 나한테 집중하는 걸 못 견뎠다. '정말 많이 부족하구나' 고민할 때 선희 선배가 '신영아, 너 너무 재밌어. 너무 재밌는데 언니가 50만 원을 빌려줄게. 그냥 줄 수도 있어. 책을 큰 거 있지? 동화책 같은 거 아니면 위인전 같은 거 크게 읽을 수 있겠어? 이걸로 속상해서 술을 먹을 수도 있는데 웬만하면 책을 소리 내서 한번 읽어봐'라고 해줬다. 그렇게 책을 소리 내 읽었다. 인생 목표가 사연 한 번만 제대로 읽어 보자였다. 결국 마지막 주에 제대로 읽었다. '내가 (라디오 방송) 잘리겠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선희 선배가 다 막아줬더라. '얘는 정말 재밌다' '언젠가 터진다'면서. 스승의 날이 되면 늘 선희 선배한테 간다. 케이크 아니면 카네이션 들고. 선희 선배는 내 설리번(헬렌 켈러의 스승)이다."
-그 뒤 유명 연예인 팬미팅 진행을 거의 도맡아 했다.
"사연이 있다. 라디오 '심심타파' 공개방송을 처음 하는데 '현타'가 왔다. 대학로에서 몇 년을 코앞에서 관객 얼굴 보고 공연했는데도 너무 부끄럽고, 그냥 내 연기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소통하면서 프로그램 진행을 못 하겠더라.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훨씬 더 내성적이란 걸 그때 알았다. 방송인으로서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자책했다. 그때 어떤 가수한테 "언니 와 줄 수 있어?"라고 팬미팅 진행 제의가 왔다. "나 공짜야"라며 10, 11년을 공짜로 친분 있는 연예인 팬미팅 사회 행사를 뛰었다. 관객과 소통하며 진행하는 걸 몸에 익히기 위해서. 내 부족한 점 때문에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진짜 많이 했다. 어려선 나이트클럽 행사도 많이 했다. 그렇게 사서 고생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전국노래자랑' 할 때 그래도 큰 탈 없이 시작한 거 같다."
-어떻게 이런 역경을 견뎌왔을까.
"중학생 때 사람(닐 암스트롱)이 달에 간 걸 처음 알았다. 노력해서 저 달에도 갔는데 지구 안에서 못할 게 뭐가 있을까. 가난한 게 뭐 어때? 우리 부모가 가난한 거지 난 부자일 수도 있잖아. '흙수저'라고들 하지만 난 수저 자체가 없었다. 판잣집 살던 내가 벽돌집 사는 꿈을 이젠 이뤘다. 그 이후 늘 그랬다, 못할 게 뭐 있어라고. 셀럽파이브 준비할 때도 '신영아 이게 될까'라고 주위에서 걱정했다. '아니 못할 게 뭐가 있어?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면 되는 거지. 왜 남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냐고'고 했다."
-그 도전의 일환으로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출연한 건가.
"(전) 회사에서 박찬욱 감독님 영화가 들어왔다고 하더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코미디언이 영화를? 다 우습게 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박 감독님이 먼저 편견을 깨 줬다. 처음 만났을 때 박 감독님이 '행님아'는 어떻게 나온 거냐고 물었다. 첫 촬영을 "사철성(서현우)이 왼손잡이죠"란 내 대사로 시작했다.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깨달았다. '아, 박해일이 초보인 후배 형사 연수(김신영)한테 (연기) 톤을 맞춰라, 연기 베테랑인 박해일은 충분히 그 톤을 맞춰가며 연기할 수 있는 분이니'. 박 감독님의 이 세심한 배려를 알고 나니 뭉클했다. 가끔 연락한다. '전국노래자랑' 잘 봤다고 하시더라."
-득도의 아이콘이 돼 예전의 막무가내 캐릭터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늘 주성치를 꿈꾼다. 시나리오를 쓰고 그 세계관을 펼치고 싶다. 공격수로서의 '매운맛'은 언제든지 준비돼 있다. 지금도 새로운 걸 소속사(씨제스스튜디오)와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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