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 살인·4명 살인미수' 흉악범... 이 남자 60번째 사형수가 될까

입력
2023.10.01 10:00
수정
2023.10.0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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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법, 지난달 이례적 1심 사형 선고
재판부 "극단적 인명 경시... 영구격리"
'사형 실종시대'의 흉악범... 새 기준 예상

2007년 10월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사형폐지국가 선포식에 참석한 국제앰네스티 유스 동아리 학생들이 사형폐지관련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7년 10월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사형폐지국가 선포식에 참석한 국제앰네스티 유스 동아리 학생들이 사형폐지관련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재판장)

"하하하, 검사 놈아 시원하제?"(피고인)

8월 24일 창원지법 형사 법정. 피고인 정모(69)씨는 사형 선고가 나오자 재판부를 향해 박수를 치며 담당 검사에게 반말로 시비를 걸었다. 그는 재판 도중 재판부를 향해 “검사 체면 한번 세워 주이소, 시원하게 사형 집행을 한 번 딱 내려 주고”라며 법정 모독성 발언을 했고, “재판장님도 지금 부장판사님 정도 되시면 커리어가 있는데, 사형 집행도 아직 한번 안 해보셨을 거니까"라며 재판장을 직접 겨냥한 조롱도 쏟아냈다.

반성도, 후회도, 자책도 없어 보이는 이 막무가내의 남자. 그는 과연 어떤 죄로 사형 판결까지 받게 되었던 걸까. 그것도, 전국 법원에서 1년에 기껏해야 몇 건 정도만 사형 판결이 나오는 이 '사형 실종'의 시대에.

30년간 옥살이를 했던 전과자

정씨는 지난해 8월 "늙은 새끼"라는 말에 격분해 40대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한국일보가 1심 판결문에서 법원이 인정한 사실을 살펴본 결과, 정씨는 성인이 된 이후 집보다 교도소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전과자였다. 1970년부터 지난해까지 29년 8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징역형만 14번을 받았는데, 이번 사건을 포함해 2명을 살인했고 4명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친 전력도 있다. 정씨는 남의 목숨을 위협하거나 해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언제나 "피해자 말에 화가 났다"고 설명해왔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이번 사건은 "평생에 걸쳐 누적된 극단적 인명 경시 살인"으로 판단했다. '극단적 인명 경시 살인'은 양형기준상 살인 유형 5가지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불특정 다수 무차별 살해 등으로 2명 이상을 죽이거나 △그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재판부는 정씨 사건을 후자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범행 후에 나타난 정황도 악질적이라고 봤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는 피해자 탓을 했고, 공판 과정에서는 수시로 사법제도를 조롱했다. 참다 못한 피해자 유족도 엄벌을 탄원했다.

결국 법원은 정씨를 구제할 수단이 전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씨를 사회에서 영구 격리해야 한다"며 사형을 선택했다. 무기징역을 선고하면 가석방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 추가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1997년 이후 26년 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로 간주된 것도 "양형에 고려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사형 선고의 기준 세워질 듯

판사와 검사를 조롱하며 '센 척'을 했던 정씨. 그러나 그는 1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돌연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심은 부산고법에서 진행된다.

법원 안팎에서는 2명을 죽이고 4명을 죽이려 한 이 흉악한 범죄자가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을 지를 주목하고 있다. 웬만한 살인범들에게도 대부분 장기형이나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상황에서, 매우 죄질이 나쁜 정씨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바로 '사형 판결의 기준'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마지막 사형 확정 판결은 7년 7개월 전(육군 22사단 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임도빈 병장)이었다.

법조계에서는 상급심이 범행 경위와 수법을 치밀하게 따져볼 거라고 예측한다. 법원은 최근 살인을 다시 저지를 살인 재범자에게도 사형을 선고하지 않을 만큼, 사형에 높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살인죄로 15년을 복역했다가 출소한 후 또 2명을 살해한 권재찬이 최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은 이유는 "살해의 계획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잔혹한 범행수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살인 판결 600여건을 분석한 이정원 한림대 교수는 "정씨는 1명을 살해한 데다 계획성도 뚜렷하지 않아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으로 보기 어렵다"며 "정씨가 갱생의지를 적극적으로 호소한다면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정씨에게 교화 가능성이 없어 보여 극단적 인명 경시 살인을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재판부가 '사형 미집행'을 고려 사항으로 보지 않거나, 사형을 사실상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으로 간주한 점도 법원 내부에선 이견이 있다. 서울 지역의 또 다른 판사는 "집행하지 않는데 굳이 사형을 선고해야 하냐는 의문도 있다"며 "현실에선 사형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으로 기능하더라도 법이 없는 상황에서 법원이 그렇게 해석하는 건 과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사형이 엄존하지만 집행이 되지 않아, 사실상 종신형의 기능을 가지는 모순적인 상황.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사형제가 존치되는 이상 선고 기준에 대한 고민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형이 확정되면 정씨는 60번째 사형수가 된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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