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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탄압과 그릇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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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주변 반응이 묘했다. 통쾌해하는 이들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쪽으로 추가 확 쏠리지는 않았다. 이유가 궁금해서 정치색이 옅은 지인들에게 질문 두 개를 동시에 던져봤다. ①영장청구 등 이 대표 수사는 정치탄압이라고 생각하는지 ②이 대표에게 동정심이 가는지.
의외로 ①에는 정치탄압으로 비친다고 답변하면서 ②에는 그렇지 않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이들이 꽤 됐다. 정치탄압 소지는 있는 듯한데 동정심은 생기지 않는다는 일견 모순된 답변이었다. 괴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오랜 사생활 논란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대선 이후 행보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이 대표는 잇단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선택의 바늘은 자주 대의명분보다 안전한 선택을 가리켰다. 책임 정치 차원에서 잠시 2선 후퇴를 하라는 주변 권유가 많았지만 대선 3개월 만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배지를 달았던 그다. 연고가 있는 분당갑 대신 연고는 없지만 당선 가능성은 높은 계양을을 지역구로 골랐다. 개인 사법 리스크가 당 전체로 번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이 대표는 개의치 않고 지난해 8월 당대표가 됐다. 그가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래서 의외였다. 하지만 국회 회기 중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말을 바꿨다. 체포동의안 부결을 의원들에게 요청했다. 그럼에도 가결이 되자 가결표 행사 의원들을 색출하려는 광풍이 당내에 불고 있다. 상식 밖의 풍경을 이 대표는 말리지 않고 있다. 그가 궁지에 몰려 좁은 안목으로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감안해도 아쉽다. 영장심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이 대표는 이번에 자신의 그릇 크기를 내보이고 말았다.
친명계는 이번 체포동의안 가결을 2004년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주도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에 비유한다. 그때는 분노한 민심이 같은 해 총선에서 탄핵 주도 세력을 심판했다. 지금 분위기는 다르다. 사람들은 탄압받는다고 무조건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치인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도 함께 평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 전 대통령은 당장의 유불리보다는 지역주의 타파와 같은 명분을 중시하는 길을 걸었다.
그래도 ①의 문제는 남는다. 부족한 정치인이라고 표적 수사를 받거나 짓지 않은 죄로 감옥에 가도 괜찮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표 수사가 형평성을 잃은 것 같다는 인상은 비전문가만 받는 건 아니다. 검찰 출신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얼마 전 “옛날에는 아무리 큰 사건도 두 달 이상 끌지 않았는데 이 대표 비리 사건은 (검찰이) 2년이나 끌고 있다”면서 “이러다 정권 내내 이 대표 비리 수사로 끝날 수 있겠다”고 평했다.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먼지떨이 수사를 벌여서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차차 가려질 일로 26일 영장심사가 첫 시험대다. 그래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수사나 징계 같은 외력으로 유권자 판단을 대신하는 일은 줄어들면 좋겠다. 소모적인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탄압의 희생자는 결백이 입증된 것만으로 큰 자리를 얻곤 한다. 이는 실력과 무관하기 때문에 나라에 손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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