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 내년부터 '치매' 용어 퇴출한다

입력
2023.09.26 04:00
수정
2023.10.02 09:4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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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 "인식 개선 위해 용어 변경"
인지증·인지저하증·인지병 최종 후보 검토…내달 확정
본보 '미씽' 기획 "정말 열심히 읽어... 당국자로서 감사"
배회감지기 보급률 높이고, 인식표도 개선 의지 드러내
#기억해챌린지 동참... "국민 모두 참여해주시길" 당부


내년부터 대한민국 공문서에 치매라는 말이 사라질 전망이다. 전국 256곳에 설치돼 있는 치매안심센터 명칭에서도 빠진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안에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행정 용어로 치매라는 단어 대신 대체 용어를 확정해 내년부터 새롭게 적용할 방침이다. 대체 용어로는 '인지증', '인지저하증', '인지병'이 최종 후보군으로 검토되고 있다.

퇴행성 뇌질환을 폭넓게 일컫는 치매는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가 이어진 한자어로, 부정적 편견을 키우고 환자와 가족에게 모멸감을 안겨준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일본, 중국, 대만도 치매라는 명칭을 썼지만,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자 모두 바꿨다. 대만은 '실지증'(2001년), 일본은 '인지증'(2004년), 중국은 '뇌퇴화증'(2012년)으로 변경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21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고령화 시대에 치매라는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임에도, 용어가 주는 부정적 의미 때문에 조기 진단과 치료를 방해하는 원인이 되고, 질병의 특징을 왜곡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올해 안에 치매라는 말을 대체할 용어를 확정해 내년에는 정부 공문서에 치매라는 말이 쓰이지 않도록 바꿔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용어 변경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이날 인터뷰가 처음이다.

"편견 유발하는 치매란 말부터 없애야 인식 개선돼"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2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 접견실에서 치매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차관은 "치매 용어 변경은 올해 안에 마무리 짓겠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2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 접견실에서 치매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차관은 "치매 용어 변경은 올해 안에 마무리 짓겠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 차관은 용어 변경 이유에 대해 "간질이 '뇌전증'으로, '정신분열병'은 '조현병'으로 각각 변경되면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치매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인식 개선을 위해선 용어 변경이 선행돼야 한다는 정부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복지부는 지난 1월 의료계, 복지 전문가, 치매환자 가족단체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치매용어 개정협의체'를 띄우며 용어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이 차관은 "국민들에게 어떤 용어가 더 쉬운 말로 인식될 수 있는지 국립국어원에 최종 검토를 맡겨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국립국어원이 진행하는 국민수용도 조사(2,500명 대상) 결과가 다음 달 말 나오는 대로, 정부는 치매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후 의료계와 협의를 거쳐 의학용어 변경도 추진한다.

"치매 실종 다룬 미씽 기획 정독... 경종 울려줘 감사"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21일 실종 위험이 있는 어르신들에게 제공되는 인식표(스티커)를 살펴보고 있다. 인식표가 눈에 잘 띄지 않고 치매 환자 정보가 없어 시민들이 알아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차관은 이날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이 심층 취재한 '미씽-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기획 기사를 모두 출력해 가져왔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21일 실종 위험이 있는 어르신들에게 제공되는 인식표(스티커)를 살펴보고 있다. 인식표가 눈에 잘 띄지 않고 치매 환자 정보가 없어 시민들이 알아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차관은 이날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이 심층 취재한 '미씽-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기획 기사를 모두 출력해 가져왔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번 인터뷰는 치매 실종 문제를 심층취재한 본보 엑설런스랩 '미씽, 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기획에 보건복지부가 적극 공감하면서 마련됐다. 5일 동안 연재된 기획기사를 직접 출력해온 이 차관은 "치매 실종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일깨우고 경종을 울린 기획기사는 지금껏 없었다"며 "한국일보 기사를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서 읽었다. 정책 당국자로서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그러면서 치매 실종 예방 정책을 보다 세심하게 손질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먼저 배회가 심한 치매 환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보호자에게 알려주는 배회 감지기가 부족하다는 본보 지적에 대해 "배회 감지기가 필요한 치매 환자들의 수요부터 면밀히 파악해 성능 좋은 기기가 지속적으로 보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배회 인식표' 개선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인식표는 실종을 예방하기 위해 치매 환자들 옷에 부착하는 스티커지만, 막상 이를 알아보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이 차관은 "인식표의 목적이 도움의 필요성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인데,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며 "시민들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서 개별 시행 중인 '치매 환자 실종 모의 훈련'을 광역치매안심센터 필수 사업으로 지정해, 전국 단위로 확대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치매는 나의 일, 나의 가족의 일... 기억해챌린지 국민 모두 참여해주시길"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21일 한국일보 본사 스튜디오에서 기억해챌린지에 함께하며 국민적 참여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h알파 다이브 영상 캡처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21일 한국일보 본사 스튜디오에서 기억해챌린지에 함께하며 국민적 참여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h알파 다이브 영상 캡처

정부는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를 표방하면서 국가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이 차관은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치매 정책의 철학을 'AIP(aging in place)'라고 강조하면서 "살던 곳에서, 안전한 치료와 돌봄을 받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재택 의료를 활성화시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차관은 한국일보가 '미씽' 기획을 마무리하며 시작한 치매 인식 개선 캠페인 #기억해챌린지를 함께하며 국민적 참여도 당부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치매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노화 과정으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나의 일이고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기억해챌린지에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한다는 의미로, 여러분만의 무한대를 만들어주세요.'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미씽-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취재팀과 영상팀 PD들이 각자의 무한대를 응용 동작으로 만들었다. 최주연 기자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한다는 의미로, 여러분만의 무한대를 만들어주세요.'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미씽-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취재팀과 영상팀 PD들이 각자의 무한대를 응용 동작으로 만들었다. 최주연 기자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미씽-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취재팀은 치매 실종 노인들의 안전한 귀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치매 인식 개선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손길로 치매 노인들을 돕겠다는 취지로, #기억해챌린지는 당신의 기억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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