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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판사에 '좌표' 찍는 음모론 반복... 사법불신만 키운다

입력
2023.09.25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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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한동훈-유창훈 동기"... 사실 아냐
정치권 음모론이 '사법의 정치화' 부추겨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역 인근에서 한 시민단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 탄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뉴스1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역 인근에서 한 시민단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 탄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목전에 두고, 영장전담판사의 실명을 언급하며 개인적 학연과 성향 등을 문제 삼는 '좌표 찍기' 관행이 재현됐다. 최근 법원의 편향성 논란에 개별 법관의 책임이 없지는 않지만, 정치적 사건의 구속영장 청구 때마다 영장전담판사의 결정을 '음모론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려는 태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무부는 23일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끼칠 의도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것에 필요한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무부가 휴일에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낸 것은 전날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대표 영장심사를 담당하는 유창훈 부장판사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관계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담당 판사가 한 장관과 서울대 법대 92학번 동기"라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유 부장판사는 한 장관과 나이만 같고 재수를 한 93학번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 입장에서도 장관과 판사의 개인적 인연을 부각하는 '묻지마 식' 의혹 제기는 곤혹스럽다. 법원 사무 절차에 따르면 구속영장 심사는 영장이 청구가 접수된 주의 담당 판사가 맡는 게 원칙이고, 이에 따라 이 대표 사건은 18일 근무였던 유 부장판사에게 자동 배당됐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검찰을 비롯한 사건 당사자가 재판부 배당에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논란이 중요 사건 구속영장 심사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음모론을 제기하며 영장판사를 공격하는 일은 여야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진보 성향 네티즌들은 영장전담판사를 "판레기(판사+쓰레기)" "적폐판사" 등으로 폄훼하며 인신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반대로 조 전 장관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법원 홈페이지는 보수 성향 네티즌들의 항의로 접속이 마비되기도 했다.

영장심사가 특히 정치 공방의 타깃이 되는 이유는 사법부의 '첫 번째 판단'으로서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본안 1심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최소 수개월에서 최대 1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영장 발부·기각은 검찰 수사에 대한 초반 여론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일부러 영장전담판사의 실명을 사전에 언급해 심사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모종의 음모가 있는 것처럼 미리 묘사를 해서 원치 않는 결정이 나오는 경우 '거래가 있었다'는 냄새를 풍겨 지지자들을 다잡으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태도야말로 사법의 정치화를 부추기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장심사 경험이 풍부한 수도권 지역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법적 요건에 따라 구속 필요성만을 따질 뿐인데 유·무죄 판단이라고 단정하는 관행 때문에 지나친 관심이 쏠린다"고 지적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사법부도 판단 결과를 평가받아야 하는 기관임은 맞지만, 출신 학교와 업무 경력을 가지고 근거 없이 연결 짓는 행태는 정당한 감시라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사법부에 선제적 압박을 가하는 행위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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