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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방울이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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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하던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오아시스는 예체능 과목이었다. 체육 시간에 땀 흘리며 농구하고, 음악 시간에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며 공부로 지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음악 선생님이 바뀌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 오신 남자 선생님은 음악보다는 특수부대 군인이 어울릴 듯한 우락부락한 인상이셨다. 그리고 최대한 학생들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하셨던 전임 선생님과 달리, 엄격하게 교과서 내용들을 그대로 가르치려고 하셨다.
특히 학생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가곡을 열심히 가르치셨는데, 실기시험 과제로 '그리운 금강산'을 외워 부르도록 했다. 변성기가 온 남학생들 입장에서는 음이 너무 높아 제대로 부르기 힘든 곡이었다. 게다가 박자는 어찌나 까다롭던지, '그리운 만이천봉'에서 박자를 놓쳐 야단맞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우린 팝송이나 가요가 좋은데 왜 관심도, 재미도 없는 이런 노래를 억지로 가르치실까 불만을 갖는 친구도 많았다.
그리고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나도 이제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의 나이가 되었다. 팝송과 가요 말고 클래식도 듣고 즐기게 된 나는 며칠 전 독일에서 온 어느 오케스트라의 공연장을 찾았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멋지게 연주한 오케스트라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환호 속에 다시 무대에 오른 지휘자는 기쁜 얼굴로 앙코르곡을 연주했다. 그의 지휘봉이 가볍게 공기를 가르며 곡이 시작되는 순간, 객석의 관객들이 모두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 가곡, 관현악으로 편곡된 ‘그리운 금강산’이었다.
나는 관객들이 저도 모르게 내지른 그 탄성이 너무나 놀랍고 반갑고, 그리고 감동적이었다.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이 학창 시절 나와 같은 음악 선생님을 만났던 것이다. ‘이런 거 배워서 어디에 쓰냐’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달래고 깨우치며,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시절의 어느 한구석을 이 가곡으로 수놓아 두셨다. 수십 년이 흘러 그 가르침을 우연히 다시 만난 청중들의 반가움이란, ‘클래식 감상 시 절대 침묵’이라는 기본 예의마저 무의식중에 뚫고 나올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진정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성장했다.
요즘 교육 현장에선 우리 사회의 고민과 아픔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나 역시 교육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교육에 무슨 힘이나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곤 했다. 교육이 과연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좋은 인재를 길러낸들 그게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 힘이 될까? 매년 3월 새 학기를 맞이하면 쳇바퀴 돌 듯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 무력감을 느낄 때마다 떠올렸던 생각이다. 그런 나에게 공연장에서 들은 수많은 관객의 ‘아!’라는 한마디 탄성은 커다란 해답으로 들렸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가장 확실한 형태로 세상을 바꾸는 힘은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바다를 이루는 물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마음 하나하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1년 반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써왔던 칼럼이 이번 회로 마무리된다. 그간 전해드린 나의 이야기들도 독자 여러분들께 작은 기쁨을 드리는 정성스러운 물 한 방울이었기를 기원하며 펜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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