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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분홍색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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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운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림길 앞에서 당황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좌우와 앞뒤를 모두 신경 써야 하는 고속도로 진입 상황이라면 자칫 아찔함을 겪기도 한다. 그렇게 식은땀이 나는 경험을 나만 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어느 때부터 고속도로 진입로나 교차로에 분홍과 초록의 선이 그려졌다. 길을 헤매다가 '색깔 유도선'을 만나면 비로소 안심이 된다. 왜 진작 이런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나 싶다.
색깔 유도선은 2012년에 도입됐다. 2011년 안산 분기점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를 계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도로공사와 윤석덕 차장의 노력이었다고 한다. 기사를 읽으며 필자는 먼저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2012년 당시 색깔 유도선은 도로교통법에 대한 위반이라는 점이다. 차로에 쓸 수 있는 색으로 흰색,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청색만 지정돼 있어, 분홍색과 초록색은 쓸 수 없었다. 공공시설에 규정이 따를 것은 예상되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규정 이외는 '위법'이라는 논리는 독선적이다.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불법임에도 다수의 안전을 위해 행동으로 옮긴 공사 직원의 용기이다. 기사에서 윤 차장은, 규정 이외의 색깔이라 스스로도 망설일 수밖에 없을뿐더러 주위에서도 많이 만류했다고 했다. 만약 그때 불법이라는 이유로 생각을 내려놓았다면 지금의 시스템은 없다. 좋은 성과 덕분에 유도선은 2014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됐고, 2017년 국토교통부 노면 색깔 관리 매뉴얼의 발간에 이어, 2021년에는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이른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불법의 법제화'라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세 번째로 놀라운 사실은, 목숨을 구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유치원 아이들에게서 얻었다는 점이다. 퇴근 후 아이들의 그림을 본 윤 차장은 도로에도 색을 입혀 길을 쉽게 찾게 하려 했다. 기성세대가 그어 둔 법적 한계를 어린이의 시각을 통해 넘어섰고, 결론적으로 도로 위 분홍색은 사고율을 85%나 감소시키는 해결책이 되었다.
원래 색깔은 상징성을 띠기 마련이다. 어떤 분홍색은 주차장에서 임산부를 지켜주고, 어떤 분홍색은 노면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떤 상징이더라도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한 예로, ‘황색 저널리즘’은 선정성을 뜻한다. 그러나 긴 역사를 돌아보면, 노란색은 오랫동안 황제의 권력과 부유함을 상징했다. 도로에서 경계를 뜻했던 노란색 신호등이 축구에서 경고의 신호로 확장된 일도 있다. 또, 우리 주위에는 빨간색 전기밥솥이 흔한데, 그 이유는 빨간색이 식욕을 돋우는 색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빨간색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특정한 색을 차별하거나 일괄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곧 색의 노예가 되고 만다. 어디 색에 대해서만 그러하랴?
법에 위반되면 불법, 비법, 위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법도 사람이 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불법이거나 위법인 일이란 없다. 이미 발생한 문제는 누군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용감한 시도로 해결되는 법이다. 이때 새로운 무언가가 불법이라면, 그곳이야말로 기대할 바 없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적법과 합법을 향해 노력할 여지가 있는 미래를 바라며 아침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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