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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이라니! 앞으로 10년은?

입력
2023.09.21 22:00
26면
'내 꿈은 신간 읽는 책방 할머니' 북토크. 생각을담는집 제공

'내 꿈은 신간 읽는 책방 할머니' 북토크. 생각을담는집 제공

책방이라고 차렸으니 간판을 달아야 했다. 고민하다 집 앞 커다란 전나무에 작은 간판을 꽁, 달았다. 마을 막다른 끝이다 보니 종일 지나는 사람 하나 없었다. 무슨 소리가 나서 보면 바람 소리였고, 고라니가 뛰어갔다. 마을도 낯설고 책방도 낯설었다. 책 읽다 마당에서 풀을 뽑았다. 정원 나무를 전지하다 들어와 글을 쓰고, 저녁이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달을 봤다.

어쩌다 사람이 오면 놀라서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고, 아는 사람이 오면 연락도 없이 왔느냐며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누군가 오는 것이 신기했고 고마웠다. 드문드문 피어난 들꽃처럼 그들과 나눈 이야기가 내 마음에 피어났다.

어느 날 시인을 초대해 함께 시를 읽었다. 작가 초대 강연을 했다. 독서 모임을 꾸리고, 글쓰기 수업을 했다. 클래식 음악회를 하고, 작은 책방들을 모아 축제를 하기도 했다. 책방은 책을 매개로 함께 노는 데 딱 좋은 구실이 되었다. 매개체가 책이다 보니 책이라고 하는 그 보편적이면서 특수함으로 인해 흥미 삼아 한번 체험하고 마는 것들과는 조금 성격이 달랐다. 이제까지의 나와 결별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음을 치유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사람도 있었다. 책방을 다니기 전과 그 후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것이 조금 놀라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변한 걸 깨달았다. 성형수술처럼 전후 모습을 비교할 수야 없지만, 그것이 느껴졌다.

며칠 전 '내 꿈은 신간 읽는 책방 할머니' 북토크를 할 때 누군가 말했다. 책방에서는, 잊고 있었던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책방을 와야 정신없이 달려가는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고백하는 이 곁에서 책방이 무슨 종교라도 되느냐며 웃었다. 책방을 드나들었던 이들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시골에서, 책방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일단 해 보는 거지, 했지만 집 계약 후 흥분보다 걱정이 컸다. 기우였다. 생활은 익숙했고, 책방은 평생 한 듯 편안했다.

어느 날 갑자기 만 5년이라고 했을 때 놀랐다. 개업식이나 1주년 기념 같은 행사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5년인데. 놀 구실을 만들었다. 10월 7일, 마당에서 외국인 노동자 자녀를 위한 플리마켓을 열기로 했다. 독서 모임 회원 등 평소 책방을 드나들던 이들이 주축이다. 작가와 연주자들을 초대해 동시 쓰기, 초상화 그려주기, 마을 길 걷기, 클래식 음악회도 진행하기로 했다. 잔치다.

날로 세상은 좋아진다. 물건도, 공간도 스쳐 지나가기 바쁘다. 물건은 더 좋은 물건을 위해 소비하고, 공간은 더 멋진 공간을 위해 소비한다. 머물기 위해서는 멈춰야 하는데 멈출 새가 없다. 그러나 안다. 때때로 멈추고 스스로 질박한 자신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책방은 그렇게 자신을 만나게 하는 공간 중 하나가 되고 그만의 장소가 된다.

태백에서 왔던 일흔 가까운 나이의 사람이 말했었다. 1년에 한 번씩 오면 열 번은 오지 않겠느냐고. 그새 그는 두 번을 다녀갔다. 지난 5년처럼 앞으로 10년도 금세 지나갈 것이다. 별일 없다면 나는 책방 할머니로 늙어가며 신간을 읽고 글을 쓰고 그러다 열무를 뽑아 김치를 담글 것이다. 그러다 벌써 10년? 하면서 뭘 하고 놀까 궁리할 것이다. 그런 꿈을 꾸며 나는 오늘도 책방 문을 연다.


임후남 시인·생각을담는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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