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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대학까지'… 산골 마을 화천의 출산율 '반등'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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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6년 전 결혼해 줄곧 남편 고향인 강원도 화천군에서 살고 있는 박지영(40)씨. 박씨는 지난 4월 넷째 아이를 출산한 뒤 2주 동안 공공산후조리원에서 전에 없던 호사를 누렸다. 화천에 있는 유일한 조리원으로 군이 지난해 2월 설립한 이곳에서 방마다 설치된 안마 의자를 맘껏 이용했고, 전신ㆍ가슴마사지도 원없이 받았다. 산부인과와 소아과 전문의가 내원해 실시하는 모유 수유와 신생아 관리 강의도 들으며 온전히 건강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공짜였다. 군이 1년 이상 거주한 주민에게는 무료(1년 미만 거주민 90만 원, 타지역민 180만 원)로 제공한 덕분이다. 무엇보다 집 근처에 머물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안정 효과가 컸다. 박씨는 먼저 낳은 세 자녀(6세, 5세, 3세)는 모두 화천에서 1시간 거리인 춘천시에서 낳았고, 산후조리 역시 그곳에서 했다. 당시만 해도 화천에는 산부인과 병원이나 조리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춘천의 조리원을 이용했던 둘째와 셋째 출산 때는 각각 300만 원 가량인 비용도 부담이었고, 집에 있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줄 수 없어 마음 한구석이 늘 불안했다”며 “화천 조리원에서는 집이 가까워 하루라도 더 아이들을 볼 수 있어 마음이 정말 편했다”고 했다. 이어 “주변에서 ‘넷째 낳은 사람 같지 않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미소 지었다.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휴전선 바로 밑 북한과 지척이고, 한국전쟁 이전엔 북한 땅이었으며 인구 소멸 위기지역이기도 한 화천의 슬로건이다. 면적(909.1k㎡)은 서울의 1.5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400분의 1인 고작 2만3,190명(2023년 6월 기준)에 불과한 지자체가 내세운 구호 치고는 너무 거창하게 들린다. 거짓말이나 허황에 가깝다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
그러나 박지영씨의 경험담을 듣고 14일 공공산후조리원(전체 5개실)을 직접 둘러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설립된 조리원은 벌써 내년 4월까지 예약이 꽉 찼다. 군청 홈페이지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가기 싫을 만큼 좋았다” “조리원은 내 인생의 로또 당첨” “조리원 직원 월급 올려주세요” 등 이용자들이 쓴 칭찬글이 자자하다. 군에 따르면 지난해 101명, 올해는 8월까지 벌써 80명이 이용했고, 이 가운데 95%는 화천군민이다. 군 관계자는 “조리원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타지인이 전액을 부담해 이용한 적도 있고, 타 지역 대기자가 5,6명인 적도 있었지만 일단 군민이 우선이라 올해의 경우 타지인 이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화천은 인구가 매년 꾸준히 감소하는 와중에 최근엔 출산율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6년 연속 줄어들던 출생아가 조리원 설립 후 지난해 반등(2021년 138명→2022년 155명)에 성공한 것이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도 2018년 1.568명에서 줄곧 감소해 2021년 1.201명까지 떨어졌다가 작년에 1.402명으로 올랐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0.78명)의 2배에 육박하고, 전국 229개 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6위(통계청 2022년 출생 통계)에 해당한다.
인구 문제는 출생아 증가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전출)을 줄이고, 이사 오는 사람(전입)을 늘려야 한다. 특히 학부모들은 도시건 시골이건 아이를 키울 때 교육 문제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을 간파한 화천은 단발성 사업이나 눈길을 끄는 이색 사업을 펼치기 보다 돌봄과 교육을 강화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한마디로 “아이만 낳으면 보육과 교육은 군이 책임진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영유아와 초등학생 대상 방과 후 프로그램을 군이 직접 운영한다. 도시처럼 변변한 사설 학원은 없지만 관내 도서관과 청소년수련관, 문화센터, 글로벌교육센터 등 주요 공공시설에서 영어 중국어 코딩 줄넘기 그림책읽기 오감놀이 종이접기 과학실험 역사 독서토론 한자 주산 피아노 발레 등 다양한 강좌를 낮부터 오후 7시까지 들을 수 있다. 연간 117개 강좌(방학 포함)나 되고, 모두 무료(일부 교재비ㆍ재료비 별도)다. 시설이 곳곳에 퍼져 있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차량(스마트안심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원하는 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호출하면 탈 수 있는 방식이라 학부모가 수시로 데리러 오고 가야하는 불편함도 없앴다. 당연히 안전도우미도 탑승한다.
화천에 사는 홍선희(48ㆍ가명)씨도 이런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홍씨의 초등학교 6학년 자녀는 4년째 영어 강좌를 수강 중이다. 그는 “주 4일(월~목) 중 이틀은 원어민 강사, 나머지 이틀은 한국인 강사에게 회화와 원서 읽기, 문법 등의 수업을 들은 뒤 발음과 듣기, 표현력 등이 몰라보게 향상됐다”며 “처음엔 도내 ‘교육 도시’로 유명한 춘천으로 이사 갈 생각도 했지만 이젠 접었고, 저는 남는 시간이 생겨 재취업까지 했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영어 등 인기 강좌는 10초면 마감되고, 20명 모집하는 강좌도 최대 ‘1분 컷’일 정도로 개학 전, 방학 전 수강신청 때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며 “2년 전 1대로 시작했던 셔틀버스도 반응이 좋아 현재 4대까지 늘렸다”고 설명했다. 군은 전국 최초로 지자체가 주도하는 초등 종일 돌봄 시설(화천 커뮤니티센터)을 연내 개관해 보육 부담을 더 완화할 계획이다. 12월 문을 여는 것을 목표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센터는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공연장 체육관 키즈카페 장난감대여소 돌봄교실 교육실 등을 갖췄다. 학기 중은 물론 방학에도 초등 1ㆍ2학년 100명을 저녁 7시까지 돌봐 맞벌이 부모의 보육 부담을 크게 줄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소년 시절 여느 도시 못지 않은 교육 혜택을 받았더라도 입시에 직면하면 또 다시 이사를 고민하는 게 현실이다. 가능하면 교육 여건이 좋은 곳에서 자녀를 명문고, 명문대에 진학시키고 싶은 학부모 마음은 똑같아서다. 실제로 군 조사 결과, 2010년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49.3%가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가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은 고민 끝에 2008년 방과후 기숙형 학원인 ‘화천학습관’을 세웠다. 중3(18명)부터 고1~3(학년별 16명) 66명이 하교 후 학습관으로 돌아와 국영수 중심의 하루 4시간 수업을 듣는다. 학생들은 교재비, 급식 및 간식비 정도만 내고, 교육 및 생활 관련 대부분의 비용은 군이 부담한다.
학생의 다양성과 창의력이 강조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긴 했다. 그러나 군이 직접 서울의 유명 강사를 초빙하고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자 호응은 뜨거웠다. 학습관 출신 졸업생들은 지금까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SKY’에 18명 입학한 것을 비롯해 수도권 대학 123명, 육사 1명, 강원대 등 도내 대학 35명, 교대 12명, 비수도권 대학 26명 진학이라는 성과를 냈다. 입소문이 나자 1년에 두 차례 치르는 학습관 선발시험 경쟁도 치열해졌다.
자녀가 공부를 좀 하거나 여유가 있으면 초등학교 졸업 후 춘천 중학교로 ‘유학’을 보내는 관행도 바뀌었다. 누적된 자연 감소로 인해 매년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현상까지 피할 수는 없지만 특정 해에 태어난 학생이 해가 지날수록 빠져나가는 현상이 크게 둔화했고,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서울에 살다 2005년 남편이 직장을 옮겨 화천에 정착한 노영희씨도 두 딸(27, 21세)을 학습관에서 공부시켜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에 보냈다. 그는 “화천으로 이사할 당시 지인들이 ‘중학교 진학 전에 교육 때문에 서울로 어차피 다시 올 테니 몇 년 후에 다시 보자’는 말을 했는데, 군에서 어렸을 때부터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해줘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군은 특히 부모나 실질적 보호자가 주민등록 기준 3년 이상 화천에 실거주하면 부모 소득과 관계없이 대학생 자녀의 4년치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대학 무상교육’도 전국 최초로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원룸과 기숙사 등의 거주비도 최대 50만원 실비 지급한다. 지난해 898명이 등록금( 15억6,487만 원)을, 811명은 거주비(14억6,336만 원)를 받았다.
작은 딸이 등록금과 거주비를 모두 받고있는 노씨는 “큰 딸의 친구 중엔 화천학습관과 화천의 교육지원 정책을 알고 경기도 일산에서 이사를 와 부모가 화천에서 사는 경우도 있다”며 “화천은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을 지자체가 앞장서 해결해준 대표 사례”라고 칭찬했다.
올해엔 경사가 겹쳤다. 화천 지역 출신자 중 미국과 중국의 명문 존스홉킨스대, 푸단대에 1명씩 진학한 것이다. 군은 역시 등록금을 지급했다. 군 관계자는 “경제적 이유로 학업을 중도 포기하거나 꿈을 접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며 “더 나아가 화천에서는 부모가 되는 것이 행복하도록, 아이 출생부터 양육까지 군이 함께 키워 지역 소멸을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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