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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분들 죄송했습니다" 반복된 악취민원에 목숨까지 저버린 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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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서 '후각을 자극해 혐오감을 주는 냄새', 즉 악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은 무수히 쌓이는데 제대로 된 해법은 요원합니다. 한국일보는 16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국내 실태 및 해외 선진 악취관리현장을 살펴보고, 전문가가 제시하는 출구전략까지 담은 기획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제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민원 제기로 너무너무 힘들다. 주변 주민분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유례없던 폭염과 장마가 모두의 불쾌지수를 한껏 끌어올렸던 7월 21일, 전남 보성군 웅치면에서 1999년부터 양돈농장(덕림축산)을 운영해 온 고(故) 정연우씨가 농장 인근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보성농업고 시절을 포함해 40년 넘게 오로지 돼지를 길러 가족을 부양해 온 정씨는 농장 경영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도 없었으며, 오랜 기간 이어진 기부로 마을 주민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돈사에서 냄새가 나는 걸 미안하게 여겨, 명절 때마다 돼지를 잡아 집집마다 나눠준 세월이 꽤나 길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정씨의 농장은 여러 차례 모범 농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동물복지', '녹색축산', '깨끗한 축산농장' 등의 이름으로 장관, 도지사로부터 받은 표창장이 다수다. 2018년엔 웅치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면민의 상'도 받았다. 그런데 정작 정씨가 유서에 남긴 죽음의 배경엔 '이웃'이 있었다. 누군가 정씨의 농장에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한 것이 발단이 됐다. 악취 민원은 얼굴도 이름도 없기에 정씨는 끝내 그 이웃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정씨가 세상을 떠난 뒤 정씨의 장녀 현주(33)씨는 보성군에 '덕림축산에 대한 악취 민원과 이에 따른 현장점검 내역을 공개해 달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보성군에는 2019년 8월부터 총 7차례 악취 민원이 제기됐는데, 올해는 5월 30일부터 정씨가 목숨을 끊은 당일인 7월 21일까지 총 4차례의 민원이 있었다. 이른 더위가 시작된 5월 말부터 제기된 민원의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7월에는 8일, 3일 간격으로 민원이 들어왔다. 국민신문고나 전화 민원을 통해 "오후 4~6시 사이 나는 악취로 생활이 불편하다", "해당 농가 주변 수질 검사를 해봐라" 등의 내용이 접수됐다. 예년과 달리 보다 구체적이고 집요한 민원 제기가 이어졌다. 민원인의 신분을 철저하게 비밀로 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보성군은 민원이 제기될 때마다 정씨의 농장을 방문했다. 출장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보성군 공무원들은 6월 8일부터 총 5차례 정씨를 만났다. 7월 18일과 19일 이틀간 3차례 농장에 왔으며, 21일에는 민원이 제기된 지 15분 만에 농장을 찾았다. 첫 방문 때는 '마을에는 악취가 느껴지지 않으나, 돈사 부지 경계에서 약한 취기가 느껴진다'며 지도를 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보성군의 제재 강도는 민원 주기가 짧아질수록 높아졌다. 19일에는 급작스레 '분뇨처리 수탁자 변경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서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알렸다.
유가족은 정씨가 숨진 날 보성군에서 '사육두수를 감축하라'고 고지한 것이 정씨에게 큰 충격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당일 오전 9시쯤 민원인으로부터 '농가의 사육두수를 확인해 보라'는 민원이 접수됐고, 보성군 공무원은 오전 11시쯤 전화로 정씨에게 "가축분뇨처리시설 허가 당시보다 많은 돼지를 기르고 있다. 사육두수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 농가는 돼지 약 2,500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가축분뇨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가축분뇨법)상 적정 사육두수인 1,733마리로 사육두수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날 오후 2시 정씨는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육두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냐', '민원을 제기한 사람이 몇 명이냐'고 물었지만 원하는 답변을 받지 못한 채 목숨을 끊었다.
현주씨는 "농장의 단위면적당 적정 사육두수는 축산법에 따르면 3,070마리인데, 거의 3분의 1이나 되는 규모를 감축하라고 한 것"이라면서 "담당 공무원이 잘못된 법적 근거를 댔다"고 말했다. 가축분뇨법 소관부처인 환경부 역시 단위 면적당 적정 마릿수는 축산법을 따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6월 개정된 가축분뇨 자원화시설 표준설계도에는 예전과 달리 가축분뇨법상 적정 사육규모를 명시하지 않고 있어서 지자체가 오인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성군 관계자는 "환경 관련 부서이니 축산법이 아니라 가축분뇨법상 적정 사육두수를 안내한 것"이라면서 "정씨가 먼저 사육두수 관련 문의를 했고, 허가 당시 1,733마리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가축분뇨 배출계획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알렸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반복적으로 제기된 민원 내용처럼 정씨 농장에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칠 정도의 악취가 풍겼는지 제대로 실측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출장결과보고서를 보면 '주민들의 생활이 불편한 경우 악취를 포집하겠다', '폭우로 악취를 포집하지 않았다', '새벽이나 저녁 시간에 악취를 포집할 예정이다'라는 문구는 있지만, 실제 실측이 이뤄지진 않았다. 악취가 얼마나 심각한지, 악취를 어떻게 저감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과태료 부과나 사육두수 감축 통보를 통해 농장주를 별건으로 압박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석주 대한한돈협회 부회장은 "실제 농장에 문제가 없으면 반복적으로 민원이 제기되어도 종결 처리될 필요가 있는데, 현재는 민원이 제기될 때마다 계속 농장을 괴롭히는 구조"라면서 "농장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면, 2회 이상 반복 민원은 종결 처리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씨는 실제 여름철 악취의 원인이 되는 분뇨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초 보성군 내 공공처리시설과 민간처리시설 2곳을 통해 가축분뇨를 처리했는데, 민간처리시설이 최근 휴업을 한 탓이다. 현주씨는 "분뇨가 쌓이면 여름에는 아무래도 악취가 날 수밖에 없다"면서 "아버지가 여러 번 보성군에 공공처리시설을 증축하거나, 민간처리시설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정씨는 공공처리시설의 퇴비 처리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7,000만 원을 들여 분뇨의 고체와 액체를 분리시키는 설비를 마련하고 시운전까지 마쳤지만, 이를 제대로 사용해 보기도 전에 군으로부터 사육두수를 줄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보성군 공공처리시설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가축분뇨는 약 70톤인데, 지역에서 발생하는 양은 약 99톤이다. 정씨 농장뿐 아니라 보성군 내 여러 농장이 분뇨 처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일환 전북대 지역건설공학과 교수는 "대형이 아닌 소형 농장들은 가축분뇨를 자체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면서 "소형 농장들도 분뇨를 빨리빨리 위탁처리해 분뇨가 쌓여 악취를 발생시키는 걸 막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랙티브] 전국 악취 지도 '우리동네 악취, 괜찮을까?
※ 한국일보는 2018년 1월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전국 모든 기초지자체 및 세종시가 접수한 악취의심지역 민원 12만 6,689건과, 이 민원에 대응해 냄새의 정도를 공식적으로 실측한 데이터 3만 3,125건을 집계해 분석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내가 사는 곳의 쾌적함을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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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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