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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 인생 비웃었지만… 삶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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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생 막바지에 내 삶을 돌아본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은 특별하고 주체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었다면 나는 실패한 삶일까.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이하 '쇼맨')는 앞선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평범한 이들에게 특별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작품이다.
마트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수아는 냉소적이고 사회성이 없는 청년이다. 우연히 놀이공원에서 탈 인형을 쓰고 있던 네블라를 만나 프로필 사진을 찍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네블라는 이베리아 반도 어딘가에 있을 법한 가상의 독재국가 파라디수스에서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를 했던 이력을 지닌 할아버지다. 평생 남을 흉내 내는 것밖에 몰랐던 그가 자신의 인생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독재자의 대역배우를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와 '바보쇼'의 쇼맨으로 활약했던 이력을 들려준다.
독재자의 대역배우 시절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네블라를 수아는 경멸한다. 네블라에게는 결과는 안 좋아도 그 순간만큼은 너무 소중해서 버릴 수 없는 기억이었지만, 독재자를 위해 복무했던 삶을 어떻게 긍정할 수 있는지 수아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아의 삶 역시 주체적이기보다는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리적인 삶이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수아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되어 양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굿걸(Good Girl)'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살았다. 마트에서도 점장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팍팍한 삶을 산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누군가의 대리 업무, 대리적인 삶뿐이다.
뮤지컬 '쇼맨'은 네블라의 흥미로운 이력을 들려주는 사이에 평생 타인의 눈에 들기 위해 마음을 졸였던 수아의 삶을 병치하며 전개한다. 타인의 흉내를 내며 살았던 네블라는 독재 정권에 복무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주체적이지 못했지만 작은 희열을 느꼈던 자신의 삶을 수아에게 대신 평가해 달라고 한다.
그의 삶을 누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인간은 제 깜냥만큼의 고난이 있고 그 고난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작품의 첫 곡 '인생은 내 키만큼'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고통을 제 키만 한 바다에 비유한다.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는 계속 쉼 없이 밀려오는데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오른다." 누군가에게는 간단히 넘어버릴 수 있는 깊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허우적거려야 가까스로 숨을 쉴 수 있는 고통이 있다. 주체적인 삶이 아니어도, 고통을 훌쩍 뛰어넘는 특별함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 수아는 입양된 집에서 장애가 있는 동생의 보모로 지냈고 착한 딸로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네블라를 통해 결국 도망쳐 나왔고 아픈 기억이었지만 그때 동생을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깨닫는다.
뮤지컬 '쇼맨'은 미국 소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남미의 가상 국가 파라디수스의 독재자 대역배우라는 이국적 소재를 다루지만 창작 뮤지컬이다. 창작 뮤지컬에서 지금껏 다루지 않았던 신선한 소재를 탄탄한 구성과 감동적 메시지, 그리고 드라마를 세련되게 이끌어가는 안정적 음악으로 지난해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 극본상, 남우주연상과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심사위원상, 크리에이터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쓸쓸하게 네블라의 삶을 되돌아보는 트럼펫 소리와 앙상블이 이루어 내는 화음이 아름다운 공연이다. 올해 공연은 단순했던 무대를 보완하고 대본을 세심하게 다듬어 완성도를 높였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며 주체적 삶을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특별하지 않고, 주체적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작품의 등장이 반갑다. 남들과 다르게 애쓰고 특별한 나의 삶을 꾸며가는 삶도 멋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하찮은 것은 아니다. 특별하지 않지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소시민들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주는 뮤지컬 '쇼맨'은 11월 12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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