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핵 허락을”, 이란 “화해 뜻 없어”… 중동 외교 난항에 애타는 바이든

입력
2023.09.2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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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완화·중국 견제 치적 욕심 지렛대
민수용 핵, 무기화 우려… 배짱에 ‘난색’
곧장 적개심 표출에 유화 제스처 ‘무색’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 미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 미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고강도 방위조약 체결과 더불어 민수용 핵농축 허락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틀어진 사이가 수감자 교환으로 조금이나마 개선되나 싶던 이란은 미국을 상대로 화해는커녕 여전한 보복 의지를 드러냈다. 기대와 어긋나는 대(對)중동 외교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애태우는 형국이다.

"미, 사우디와 '한미동맹' 수준 방위조약 논의"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간) “미국이 일본이나 한국과 맺은 군사협정과 유사한 수준의 상호방위조약 조건에 대한 논의가 미·사우디 간에 이뤄지고 있다”고 미 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해당 협약하에서는 한쪽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쪽이 군사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신문은 “미국이 유럽 동맹국과 맺은 조약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것으로 간주되는 동아시아 조약이 (사우디가 추구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진 않았지만 터무니없는 내용은 아니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 대가로 역내 라이벌 이란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충분할 정도의 안보 공약을 미국에 바라고 있다는 얘기는 미국이 중재자를 자처하기 시작한 올해 하반기 초부터 흘러나왔다. 이내 협상 진전 소식이 전해졌고, 최근 이스라엘 외교장관이 이런 내용을 담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하기도 했다.

미국 입장에서 걸리는 게 없지는 않다. NYT는 “그런 조약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군사 자원과 전투 역량을 집중해 중국 억제에 주력한다는 바이든 행정부 목표와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거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미국 판단이다. 미 관리들은 외교 협정이 아랍권과 이스라엘 간 긴장 완화의 중요한 상징이 될 수 있고, 사우디를 미국 쪽으로 끌어당기면 자연스레 중국의 영향권에서도 멀어지도록 하는 셈이라고 NYT에 설명했다. 미국의 글로벌 패권 경쟁국인 중국은 최근 부쩍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과 밀착하면서 대중동 입김을 강화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을 진짜 난감하게 만드는 건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 허용 및 기술 지원’ 요청이다. 명분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치적 욕심을 지렛대 삼아 이란에 맞설 핵무기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것으로 미국은 본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일찌감치 “이란이 핵을 개발하면 우리도 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협상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배짱인 셈이다.

유엔총회서 대미 보복 다짐한 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 참석해 연설하던 중 이슬람 경전 쿠란에 입을 맞추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 참석해 연설하던 중 이슬람 경전 쿠란에 입을 맞추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설상가상 핵 포기 궤도로 이란을 복귀시키는 일도 요원해 보인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날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매우 강한 적대감을 표출했다. 최근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의 제재로 2019년부터 한국에 묶였던 이란 자금 60억 달러가 동결 해제와 함께 전날 이란으로 송금됐고, 상대국에 구금돼 있던 수감자 5명씩의 맞교환도 이뤄졌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불과 몇 시간 전, 같은 무대 연설에서 이란의 대(對)러시아 무인기(드론) 제공, ‘히잡 시위’ 탄압 등을 거론하지 않으며 “핵무기 보유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원론적 발언만 했다. 명백한 유화 제스처였다.

그런데 라이시 대통령은 2020년 미군의 드론 폭격으로 숨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언급하며 “테러 행위에 개입한 미 정부의 모든 자를 단죄하겠다”고 경고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 지도자들이 한데 모인 유엔의 연례 최대 행사 자리였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달랐고, 미·이란 간 화해의 희망도 희미해졌다고 NYT는 평가했다. 이슬람 수니파 왕정국가들을 이스라엘과 묶어 서방 편에 결속시키고, 중국·러시아 쪽에 다가선 시아파 공화국 이란은 더 경도되지 않도록 붙잡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평화 구상’이 난항에 처했음을 보여 준 장면이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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