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수술실 CCTV 의무화 코앞에 현장은 아우성…'세계 최초'의 혼선

입력
2023.09.22 04:30
11면
구독

'CCTV 의무 설치' 2년 유예 거쳐 25일 시행
아직 CCTV 설치 수술실 현황 파악도 안 돼
지난달에야 정부 지침… "모호한 점 많아"
전전긍긍 의료계, 영상정보 유출 가장 우려

의료법 개정 이후 2년의 유예기간이 지나 25일부터 수술실 폐쇄회로(CC)TV 의무가 시행된다. 의료기관은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수술실에서 CCTV를 설치·운영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의료법 개정 이후 2년의 유예기간이 지나 25일부터 수술실 폐쇄회로(CC)TV 의무가 시행된다. 의료기관은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수술실에서 CCTV를 설치·운영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수도권의 한 전문병원은 최근 수술실 5개에 폐쇄회로(CC)TV 한 대씩을 급히 설치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내려보낸 '수술실 폐쇄회로 텔레비전 설치·운영 기준'(가이드라인)에 맞춰 고해상도(HD급) CCTV를 설치비 포함 대당 200만 원가량에 구매했다. 정부 지원금을 빼면 자체 부담이 약 500만 원인데 장기적인 유지·보수, 촬영한 영상정보 관리 인력 등에 대한 계획은 아직 구체화하지 못한 상태다.

수술실 CCTV 의무화가 임박하면서 '자신의 수술 장면을 촬영하려는 환자가 얼마나 될까'라는 예측은 오판으로 기울고 있다. 최근 "촬영이 가능하냐"는 문의 전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막상 닥치니 우리처럼 작은 병원에서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촬영물 유출은 어떻게 막을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세계 최초 시행에 병원들 혼선 "가이드라인도 모호"

21일 복지부에 따르면 의료법상 수술실 내 CCTV 설치·운영 조항이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5일부터 시행된다. 해당 조항은 2016년 성형수술 중 사망한 권대희씨 사건을 계기로 2021년 9월 24일 개정 의료법에 신설됐다. 수술실 CCTV 의무는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전례가 없어 우리가 세계 최초다. 해당 조항은 소급 적용이라 현재 운영 중인 수술실도 의무적으로 CCTV를 갖춰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올해 2분기 '의료기관 시설 및 장비 현황'을 보면 국내 병원들의 수술실은 총 8,777개다. 서울(2,293개) 경기(1,883개) 부산(694개) 대구(473개) 순이다. 의료기관 종류별로는 의원(3,195개) 병원(2,550개) 종합병원(1,814개) 상급종합병원(1,070개) 순서로 많다.

다만 모든 수술실이 CCTV 설치 대상은 아니다. 의료법은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의 수술실'로 한정했다. 국소마취만 이뤄지는 수술실이나 치료실, 회복실, 임상검사실은 제외다.

병·의원 중에서 전신마취가 필요한 성형외과와 정형외과, 수지접합·대장항문·척추·화상 전문병원 등을 감안하면 CCTV를 설치해야 하는 수술실은 수천 개로 추정된다. 종합병원 이상은 중증질환을 다루고 응급수술도 많아 병원당 수십 대는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급종합병원인 세브란스병원만 해도 CCTV 70여 대를 새로 설치했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원래 수술실에 CCTV가 있었는데 민감한 부분이라 녹화 장치는 없어서 이번에 전부 교체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CCTV 설치 의무가 적용되는 수술실이 몇 개인지, 그중 몇 곳에 설치가 완료됐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설치비를 지원하는 병·의원 수술실 개수를 전국 지자체를 통해 집계하는 중이다. 대한병원협회도 개별 병원의 사안이라 협회 차원에서 취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법 시행이 코앞인데도 준비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데에는 복지부 지침인 가이드라인이 지난달에야 나온 영향이 크다. 복지부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HD급 이상 성능, 수술실 1개 병상당 최소 1대 이상 설치, 원칙적으로 녹음 금지, 영상정보 30일 이상 보관, 열람대장 보관기간 3년, 촬영 요청 절차 등을 규정했다. 하위 법령 개정 전 혼선을 막기 위해 가이드라인부터 배포한 것인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모호한 점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촬영 거부 사유도 그중 하나다. 지체 시 생명이 위험하거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응급수술의 경우 촬영 거부가 가능한데, 의사의 판단에 따라 응급수술 범위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 영상정보 열람·제공이나 녹음 동의서 보관 기간도 명시되지 않아 의견이 분분하다. 한 병원 직원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동의한 사람이 누구냐 따질 테고, 법적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가이드라인에는 없어도 무조건 오래 갖고 있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다들 가이드라인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지 행간을 읽는 중"이라고 전했다.

병원도 환자도 여전한 보안 우려..."유출 시 끝장"

25일부터 시행되는 수술실 CCTV에 대한 우려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촬영물 유출 위험이다. 게티이미지뱅크

25일부터 시행되는 수술실 CCTV에 대한 우려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촬영물 유출 위험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법 제정 당시도 그랬지만 여전히 의료기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촬영물 유출이다. 의료법은 영상정보 저장장치와 네트워크를 분리하도록 규정했고, 복지부 가이드라인도 카메라와 저장장치는 폐쇄망 운영이 원칙이다. 네트워크를 통한 해킹을 막기 위해서지만 중소 병원들은 해킹만큼이나 내부 직원의 유출, 외부인 침입 등 '물리적 보안'이 뚫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 영상은 환자 신체가 나체에 가깝게 드러날 수 있어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민감한 개인정보다. 병원 입장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조직 및 관리적인 측면까지 대폭 강화해야 하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만에 하나라도 유출이 된다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게 병원들의 불안감이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폐쇄망이라도 내부 네트워크가 어떻게 구성됐느냐에 따라 접근 가능한 공격자가 있을 수 있다"며 "기술적인 조치와 함께 물리적인 접근 통제가 반드시 요구된다"고 말했다.

같은 대목에서 우려를 표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다음 달 성형수술을 앞둔 이모(40)씨는 "요청하지 않았는데 실제 촬영을 안 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고, 몸을 드러내는 수술 장면이 고의든 실수든 유출되지 않을까도 걱정"이라고 했다.

헌법소원까지 끝없는 갈등...복지부 "시행 뒤 문제점 개선"

이필수(오른쪽)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윤동섭 대한병원협회 회장이 지난 5일 오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들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필수(오른쪽)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윤동섭 대한병원협회 회장이 지난 5일 오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들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는 수술실 CCTV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적·소극적 의료 행위를 유발하고 의료인과 환자 간 신뢰 상실을 부를 것이라고 지적한다. 수술실 CCTV 의무화 조항이 직업수행의 자유, 인격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지난 5일 헌법소원을 제기한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도 이 점을 강조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의료인이 적극적인 치료를 기피하게 되면 국민은 최선의 진료로 건강을 회복하거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동섭 병원협회장은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로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붕괴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 명확하다"고 했다.

복지부는 일단 25일 시행에는 문제가 없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현장에서 모호하다 여기는 부분이 있어도 시행에 최선을 다하면서 가이드라인을 계속 업그레이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윤한슬 기자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