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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것만 하다가는 한국 경제도 병든다"...수렁 빠진 독일의 교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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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독일은 '유럽의 병자'가 되는가?" 독일 경제를 두고 최근 쏟아지는 질문이다.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10년 넘게 침체를 겪던 시절에 불렸던 별칭이 재차 등장한 것이다.
경고음은 여기저기서 울린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0.2%, 올해 1분기 -0.3%로 2분기 연속 역성장했다. 올해 2분기도 0%. 간신히 역성장만 면했다. 유럽연합(EU)은 상반기만 해도 0.2%로 봤던 독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이달 들어 -0.4%로 하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주요 7개국(G7) 중 올해 역성장이 예상되는 건 독일뿐(-0.3%)이라고 예상했다.
독일 경제 구조는 한국과 닮았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크다. 공교롭게도 두 요인은 최근 독일 경제를 고꾸라뜨린 원인으로 지목된다. 독일 경제 위기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이라는 점에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도 상당하다. 독일 6대 경제연구소인 독일경제연구소(DIW)의 마르셀 프라츠셔 소장, 라이프니츠 할레경제연구소(IWH)의 라인트 그로프 소장과 15일(현지시간) 화상 인터뷰를 통해 독일의 실태와 교훈을 들어봤다.
두 전문가는 모두 "독일 경제 위기는 독일 기업 부진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이유는 이렇게 요약했다. ①독일은 천연가스 55%가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천연가스 공급이 줄고 가격이 오르면서 기업의 에너지 비용이 폭등했다. 독일은 화학, 금속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 피해가 특히 더 컸다. ②독일의 최대 무역국인 중국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을 하지 못하며 수출은 부진해졌고 ③전쟁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내수 시장도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이는 방아쇠였을 뿐이다. '진짜 문제'는 내부에 있다. 그로프 소장은 "견고한 중국발 수요 등 '거품'이 걷히면서 독일 경제 취약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독일 경제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보는 이유다.
두 전문가는 "독일이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미래 산업에서 뒤처졌다"고 지적했다. 경제 성장 동력은 통상 신산업·신기술에서 나오는데, 독일은 안정만 추구했다는 뜻이다. 그로프 소장은 "국제사회 자동차 패러다임이 전기차, 자율주행차로 이동할 때 독일은 내연기관차에 머물렀던 게 대표적인 예"라고 짚었다. 연구개발도 독일이 원래 강세를 보였던 자동차, 전자기계 등에 치중됐다. 프라츠셔 소장은 "연구개발, 혁신에 대한 투자가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가 기업의 도태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규 사업 및 투자 과정에서 요구되는 규제가 지나치게 많고 복잡해, 기업의 혁신을 방해하고 의욕마저 꺾었다는 것이다. 그로프 소장은 "한 의료영상기기 제조업체가 '독일에서 허가를 받을 때 2년이 걸린 반면, 미국에선 단 2주 만에 가능했다'고 밝힌 게 독일의 관료주의를 보여 준 단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디지털 경쟁력 강화가 꼽혔다. 독일은 유럽 최대·세계 4위 경제 대국이지만, 디지털 경쟁력은 전 세계 19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에 치중한 대외 무역도 문제였다. 독일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이 40% 정도인데,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2017년 이후 중국은 독일의 수출 대상국 1~3위였고, 지난해에만 4위로 한 계단 낮아졌다. 최대 수입국도 중국으로, 수출입을 종합하면 중국은 7년 연속 독일의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 경제 상황과 무역 전략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프라츠셔 소장은 "대중국 수출 호황이 꺾였을 때 닥칠 위험을 고려하는 데 게을렀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무역 질서가 미중 패권 갈등 고착화,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서 '거래선 분산' 필요성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그로프 소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위기는 더 커졌다"고도 말했다.
노동력 부족은 독일 경제에 치명타를 날릴 잠재적 위협이다. 독일은 2000년대 들어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노동인구를 들였는데, 이때 유입된 대다수가 저숙련 노동자였다. 현재 은퇴도 임박한 상태다. 일할 사람도 없거니와, 인공지능(AI) 등 핵심 산업에 투입할 인력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는 뜻이다. 독일 개발은행 KFW 조사에 따르면, 올해 6월 '숙련 노동자가 부족하다'고 답한 기업은 42.2%였다. 저출생·고령화 탓에 노동력 부족 문제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프라츠셔 소장은 "보다 공격적인 이민 정책을 펴되, 그 정책은 매우 세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병자'라는 수식어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그로프 소장은 "그렇게 불릴 만하다"고 했다. 고금리 기조로 인한 기업 투자 저하 등 도전 요인이 산적해 상황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반면 프라츠셔 소장은 "과장된 우려"라고 봤다. 전쟁 등으로 인해 일시적 경기침체에 빠졌으나, 물가 안정을 통한 내수 경제 회복이 시작되면 내년에는 독일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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