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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주호민

입력
2023.10.04 04:30
27면

요양원을 이곳저곳 옮겨 다닐 때마다 아내가 요양센터와 보호사들에게 손편지를 보냈지만 읽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황제의 DNA가 담긴 딸의 편지는 아니라고 주장해 본다. 편지에는 환자의 상태와 시설관계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요양원을 이곳저곳 옮겨 다닐 때마다 아내가 요양센터와 보호사들에게 손편지를 보냈지만 읽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황제의 DNA가 담긴 딸의 편지는 아니라고 주장해 본다. 편지에는 환자의 상태와 시설관계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엄마 옷에 녹음기를 넣어 볼까?" 10여 년 전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오늘은 어머님이 딸을 그렇게 찾으셨어요" "아침엔 기분이 좋으셨는지 활짝 웃으셨어요. 식사도 잘하시고..." 면회 때마다 장모님을 모시고 병실에서 면회실로 내려오는 요양보호 '여사님'들의 단골멘트가 불신의 시작이었다.

치매 17년 차인 장모님은 말을 하지 못하는 데다 음식을 씹는 연하작용을 잊어버려 소화기관에 영양식을 직접 주입하는 이른바 '뱃줄'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상태다.

불신이 생긴 터에 가끔씩 온몸에서 관찰되는 작은 생채기들이 눈에 밟혔다. 옷을 갈아입히다, 목욕을 시키다, 혹은 환자가 긁다가 생긴 상처라며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보호사들의 핑계는 공기보다 가볍게 느껴졌고 비수보다 날카롭게 가슴에 꽂혔다.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담당 환자의 상태도 모르는 걸까' '우리 가족만 특별 대우를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나의 되새김질 같은 푸념은 누구도 듣지 못했다.

불만은 있었지만 녹음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싸우려는 대상이 열악한 근무환경에 처한 요양보호사들은 아니었다. 그들도 시스템 속에서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을'의 위치에 서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를 바꾸려는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데 차마 맞설 용기는 없었다.

투쟁을 포기한 채 읍소 전략으로 나섰지만 요양시설 측으로부터 '우리는 (당신이 지불하는 비용 대비)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더 좋은 대우를 받으시려거든 비싸고 좋은 사설요양시설로 옮기시라'는 직접적이고 '친절한' 해답만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일부 시설만의 문제야" "모두 같진 않을 거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입소 시설을 몇 차례 옮겨 다니며 '요양원 유목민' 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나 웹툰 작가 주호민의 뉴스를 접했다. 주씨가 자신의 장애 아들을 담당하는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한 사건이다. 신고 이후 주씨 자녀의 돌발행동 사실과 불법녹음, 주씨의 무리한 요구 등이 기사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씨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 아직도 주씨와 교사의 주장은 서로 엇갈려 해결되지 못하고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심판의 결과는 뻔하다. 무엇 하나 바뀌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리라.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세상이 아니었다. 주씨보다 먼저 받았을지도 모를 비난의 화살이 두려워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울지 못하고 침묵한다. 왜 주씨가 세상과 손절해 가며 홀로 힘들게 싸움에 참여했는지에 대해 누구도 모르게 같은 아픔을 느끼려 한다.

변화는 빠르지만 사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은 제자리걸음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시스템이 지속된다면 '을'끼리의 각자도생을 위한 행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언제까지 팔짱 끼고 '을'들의 피 말리는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을 건가.




류효진 멀티미디어부장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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