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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밀착에 '신냉전 최전선' 된 한반도…전문가들 "고차방정식 외교 필요"

입력
2023.09.18 04:30
수정
2023.09.18 10:4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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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러·대북 관계 전문가 4인 진단]
러시아, 한반도 정세 한복판에 발 들여놓아
북러, 제재 위반해 '미 주도 안보질서' 반발
전문가 "다차원 외교로 대화공간 확보해야"
중국, 북한·러시아와 느슨한 연대 가능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4년 5개월 만의 정상회담으로 한반도가 신냉전의 격랑 속에 빠졌다. 대러·대북 관계 전문가 4인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러뿐 아니라 한러관계가 전환점을 맞게 됐다며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추세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 공간을 확대하는 '고차방정식 외교'를 주문했다.

북한과 러시아, 협력 무게추 경제→군사 이동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을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뉴시스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을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뉴시스

전문가들은 17일 북러 정상들이 이번 회담으로 '미국 주도의 안보질서'에 반대 전선을 구축하며 북러관계의 일대 전환을 꾀했다고 총평했다. 소련 붕괴 이후 북러 협력의 무게추가 경제 분야에서 군사 분야로 다시 이동했다는 것이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이번 회담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포함해 기존의 국제 질서와 규범을 완전히 무시하고 도전하는 형태로 이뤄졌다"며 "한러 간 전략적 협력관계는 틀어지고 북러가 전략적 협력으로 들어가는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의 방러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대상인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정식 군수공업부 부부장 등이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북러 정상회담 관련 전문가 평가 및 제언. 그래픽=강준구 기자

북러 정상회담 관련 전문가 평가 및 제언. 그래픽=강준구 기자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러시아가 아시아를 무대로 한 패권 경쟁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라며 "판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과 북한이 갖는 효용가치가 부각되면서 한반도가 신냉전 대결 구도의 최전선으로 각인됐다"고 분석했다.

'핵 3축'까지 보여준 러시아… 북한과 군사협력 심화 가능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 비행장을 방문해 전투기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은 크네비치 군 비행장과 태평양함대 기지 등을 방문해 북러 군사협력 의지를 과시했다. 크네비치=AFP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 비행장을 방문해 전투기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은 크네비치 군 비행장과 태평양함대 기지 등을 방문해 북러 군사협력 의지를 과시했다. 크네비치=AFP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5박 6일간의 방러 기간 중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뿐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의 크네비치 군용비행장, 러시아 태평양함대 등을 방문해 핵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의 주요 전력무기들을 시찰했다. 사실상 '러시아의 핵3축 체계'(nuclear triad)를 답사한 것이다.

두진호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러시아가 핵무력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김 위원장이 다 본 것"이라며 "인공위성 기술협력을 시작으로 러시아가 핵3축 체계처럼 김 위원장의 5대 국방과업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협력이 급진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향후 안보정세와 구도에 따라 협력수위를 조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한미를 향한 강력한 경고"라며 "'평화적 이용을 위한 우주기술 개발'을 명분으로 러시아는 우선 대북제재를 회피해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꾀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두 선임연구위원은 또 "한러가 지난 30년간 우주기술 개발에 협력해온 노력을 이제 북한에 쏟아붓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위 전 대사도 "한러 우주·방산협력은 사라지고 북러 우주협력이 생긴 것"이라며 "대북제재를 이완하는 심각한 전환점"이라고 지적했다.

"고차방정식 외교 시대…통합적 외교 통한 공간 확보를"

전문가들은 북러 밀착에 대응하기 위해 △통합적 외교전략 마련 △대러·대중 외교공간 확대 △한미 기술동맹 강화 등을 제언했다.

위 전 대사는 "러시아와의 외교적 공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면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외교 전략과 방향에서 통합되고 조율된 전략을 마련하고 그 틀 안에서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외교 공간을 펼쳐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대사도 "현재 한반도 정세는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관계 관리라는 고난도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러 대화(KRD) 등 기존 확보한 대화채널을 적극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중국이 북러 밀착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중국이 북러 정상회담에 거리를 두고 있지만, '반미전선'이란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어 느슨한 연대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이 전 대사는 "중국과 러시아는 거시적 차원에서 전략적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러 연대에 중국이 합류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전 전 원장은 "중국은 신냉전 구도 부각에 신중하기 때문에 한중일 협의를 통해 북러 밀착을 억제할 수 있다"며 "러시아도 한국을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상황이어서 대러 외교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군사력 강화에 대비한 한미 기술동맹 강화도 주문했다. 두 선임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 한미 간 기술동맹 수준도 격상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과의 원자력협정과 미사일지침 등으로 일부 핵 및 미사일 기술 확보가 금지돼 있다. 한미 미사일지침은 2021년 완전히 종료됐지만, 한미 원자력협정은 아직 유효하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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