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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제2의 중국 안 되도록"…인도네시아 진출 한국 유통기업의 열쇳말은 '홀로서기'

입력
2023.09.18 04:30
수정
2023.09.18 08:1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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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구 4위 인도네시아 교역 비중↑
'돌아오지 않는 중국 시장' 경험 타산지석
인니에선 K브랜드 독자적 입지 강화 나서

15일 오후 6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뚜레쥬르 코카스점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CJ푸드빌 제공

15일 오후 6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뚜레쥬르 코카스점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CJ푸드빌 제공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는 빵과 커피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사요파니(30)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사는 사요파니(30)는 대형 쇼핑몰에 올 때마다 한국의 베이커리 브랜드 '뚜레쥬르'에서 시간을 보낸다. 널찍한 매장과 편안한 좌석,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디저트 때문이다.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뚜레쥬르 그랜드인도네시아점에서 만난 사요파니는 가장 좋아하는 빵으로 '꽈배기'라 불리는 '트위스트 도넛'과 담백한 버터 풍미를 가진 '버터멜트 크루아상'을 꼽았다. 그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좋아하는 빵이 많아 프랑스나 다른 해외 유명 기업인 줄 알았는데 한국 기업이라서 놀랐다"며 "할랄(HALAL) 인증도 갖춰 안전하고 좋은 먹거리를 찾을 때 훌륭한 선택지"라고 말했다.

2011년 인도네시아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CJ푸드빌의 뚜레쥬르는 거침없이 상승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기였던 2020년 148억 원이었던 매출은 2021년 195억 원, 지난해의 경우 334억 원으로 전년 대비 71% 증가했다. 매장 수도 2020년 44개, 2021년 45개, 2022년 51개, 올해 53개 등으로 늘고 있다.

뚜레쥬르는 2021년 현지 법인을 청산한 중국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한국에서 잘 나가는 제품을 들고 와 팔려고만 하지 않고 철저하게 현지 맞춤형 전략을 택한 이유다. 의무 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020년 인도네시아 내에서 할랄 인증을 땄다. 기온이 높아 음식이 쉽게 상하기 때문에 음식을 튀겨 먹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도넛, 크로켓 등을 집중 개발했다. 아울러 딸기 같은 신선한 제철 과일이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해 과일을 듬뿍 넣은 케이크류를 내놓았고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장진규 인도네시아 운영 총괄은 "트렌드에 민감한 인도네시아 고객층의 특성을 연구·개발(R&D)하며 프리미엄 베이커리 브랜드 시장을 이끄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현지화 전략으로 인도네시아 시장 선도할 것"

15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뚜레쥬르 그랜드 인도네시아점 매장에서 현지인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카르타=나주예 기자

15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뚜레쥬르 그랜드 인도네시아점 매장에서 현지인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카르타=나주예 기자


중국을 대체하는 동남아의 새로운 시장으로 꼽히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유통 기업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한때 한국 소비재의 대표적 수출 시장은 중국이었다. 그러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중국의 한국산 수입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한국 브랜드의 빈자리를 중국 브랜드들이 대체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우리나라 소비재 수출 2위 국가지만 지난해부터 소비재 수출 총액이 줄고 있다. 특히 식품(-9%p), 미용제품(-2.1%p), 의류(-0.8%p) 등 소비재 품목이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국산을 선호하는 '애국 소비' 흐름이 중국 내에서 만들어지면서 한국 드라마와 예능 등 한류를 등에 업고 중국 소비 시장에 진출했던 소비재 수출 모델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인도네시아에서는 철저하게 홀로 서기를 통해 독자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2008년 10월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한 ②롯데마트는 '글로벌 그로서리 1번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지역 특색을 반영한 도매형 매장현지 업체와 차별화를 위한 한국식 소매형 매장을 함께 운영 중이다. 1만7,000여 개 섬들로 이뤄져 한국처럼 일반 소매 고객을 상대로 한 기업형 슈퍼 운영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다. 김창용 롯데마트 인니법인장은 "인도네시아 시장 규모는 크고 잠재력이 상당하지만 한국에서 유행하는 상품만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며 "대부분 인구가 이슬람을 믿는 종교적 특성이나 섬이 많은 지리적 이해도를 바탕으로 각 지역 고객과 상권의 특성에 맞게 전략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로 대형 쇼핑몰에 터를 잡은 소매 매장에선 한국 식품존을 새로 꾸미고 인도네시아에서 인기를 끄는 'K푸드존'도 만들었다. 사과, 배, 딸기 등 한국산 신선 식품이 현지에서 인기를 끄는 점을 반영해 충남 부여와 경북 청송 등에서 재배한 과일을 팔고 현지 고객들이 많이 찾는 자체개발(PB) 상품도 내놓고 있다. 김 법인장은 "현지 대형마트와 차별성을 갖춘 그로서리 전문 매장으로 탈바꿈 중"이라며 "한국 유통 기업이 강한 품질을 앞세운 신선 식품과 차별화된 가공 식품으로 현지인 입맛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1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롯데마트 간다리아시티점에 마련돼 있는 한국음식 구매 구역. 자카르타=나주예 기자

1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롯데마트 간다리아시티점에 마련돼 있는 한국음식 구매 구역. 자카르타=나주예 기자


이들뿐만 아니다. 특히 식품 회사들은 까다로운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계 인스턴트 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인도네시아는 중국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라면 소비량이 많은 국가다. 국내 라면 업체 중 인도네시아 공략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삼양식품이다. 이 회사는 2017년 국내 라면업계 최초로 글로벌 3대 할랄 인증 가운데 하나인 인도네시아 공식 할랄 인증기관 무이(MUI)로부터 할랄 인증을 받고 2018년 할랄푸드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삼양식품의 대표작 불닭볶음면의 인기를 바탕으로 올해 4월 일본, 미국, 중국에 이어 인도네시아에 네 번째 해외 법인을 세웠다. 국내 라면업계에서 인도네시아 법인을 세운 곳은 삼양식품뿐이다.

④굽네치킨은 현지인에게 익숙한 볶음밥인 나시고랭을 적용해 '볼케이노 철판 볶음밥', '갈비천왕 볶음밥' 등으로 변형한 메뉴로 승부를 보고 있다. 지난해 무이(MUI) 할랄 인증을 받았으며 대부분 메뉴를 할랄 제품으로 선보인다. 최근에는 시즈닝 및 소스류를 비롯해 부침개 믹스, 허니알리오, 짬뽕 소스 등이 할랄 인증을 받았다. ⑤교촌치킨은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의 할랄(말레이시아 통용) 인증을 딴 상태로 연내 MUI 인증도 취득한다는 계획이다. ⑥SPC는 현지에 진출한 파리바게뜨 베이커리 제품에 이슬람교 비중이 높은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모든 제품에 돼지고기를 쓰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새로운 시장이 되려면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JCC 전시장에서 열린 '2023 자카르타 국제 프리미엄 소비재전'을 찾은 참가자들이 전시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자카르타=사진공동취재단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JCC 전시장에서 열린 '2023 자카르타 국제 프리미엄 소비재전'을 찾은 참가자들이 전시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자카르타=사진공동취재단


무역통상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시장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펼치는 각종 규제와 진입 장벽 때문이다. 국내 제약업계 전통의 강자 ⑦종근당은 2019년 인도네시아 GMP 및 할랄 인증을 따고 인도네시아 최초 할랄 인증 항암제 공장 운영을 준비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의약품을 유통·판매하려면 생산 설비를 갖춘 현지 회사와 손을 잡고 5년 이내에 해당 의약품의 기술 이전을 해줘야 하는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1973년 미원 인도네시아를 세워 국내 최초로 해외 플랜트를 수출한 종합식품기업 ⑧대상도 외국인 단독 투자를 금지하는 규정으로 인해 인도네시아 현지 회사와 합작 법인을 설립하는 형태로 사업을 시작해야 했다.

인도네시아 비즈니스협력센터 팀장을 지낸 복덕규 코트라 경기지원센터 부단장은 "인도네시아 식품의약품감독청(BPOM), 할랄 제품 보장법, 외국인 투자 유치 등 각종 규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며 "제재와 관세 등 장벽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중국에서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한류 문화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에만 기대지 않고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신윤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도네시아인들의 소비력이 올라오면 중국에서처럼 다른 내수기업 또는 글로벌 기업에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며 "가격과 품질만을 따지는 것을 넘어서 한국 브랜드만의 자체적 정체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 나주예 기자
박소영 기자
박지연 기자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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