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일단 묻자" 집단 매장하는 리비아에 WHO "시신 전염병 근거 없어… 인도적 매장 촉구"

입력
2023.09.16 15:30
수정
2023.09.16 15:46
구독

WHO·국제 구호단체 공동 성명 발표
"집단 매장, 유가족에게 정신적 고통"
당국은 데르나 봉쇄… 국제 구호 차질

대홍수로 도시가 휩쓸려간 북아프리카 국가 리비아의 데르나 거리가 15일 처참하게 파괴돼있다. 데르나=AP 연합뉴스

대홍수로 도시가 휩쓸려간 북아프리카 국가 리비아의 데르나 거리가 15일 처참하게 파괴돼있다. 데르나=AP 연합뉴스

북아프리카 국가 리비아에서 폭우에 따른 댐 붕괴로 한 도시에서만 1만1,000명이 숨진 가운데, 사후 처리를 두고 ‘2차 인도주의 위기’가 대두되고 있다. 시신을 회수하는 것 조차 버겁자 리비아 당국이 성급히 집단 매장을 하는 한편, 도시를 사실상 봉쇄해 국제 구호 단체의 접근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급수원 인근에 방치된 시신이 아닌 한 전염병 발생 확률은 거의 전혀 없다”며 보다 인도적인 시신 처리를 촉구했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WHO와 국제적십자사위원회(ICRC),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적신월사 등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성급한 매장은 유가족의 정신적 고통은 물론 사회적·법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며 당국에 집단 매장 중단을 요청했다.

집단 매장 전에 사진 기록이라도…

12일 리비아 데르나의 한 지역에서 굴착기가 대홍수 참사 희생자들의 유해를 집단 매장하고 있다. 데르나=AP 연합뉴스

12일 리비아 데르나의 한 지역에서 굴착기가 대홍수 참사 희생자들의 유해를 집단 매장하고 있다. 데르나=AP 연합뉴스

현재 데르나에서는 1,000구가 넘는 시신이 집단 매장되거나 화장되고 있다. 사망자 최소 1만1,000명, 실종자 1만명으로 인명 피해가 막대한 가운데 여전히 도시와 강, 해안 곳곳에 시신이 방치돼있으며 이들을 개별적으로 수습·매장할 시신 가방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신을 방치할 경우 전염병이 도져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우려 또한 당국이 성급하게 집단 매장에 나서는 배경이다.

그러나 국제 보건·구호단체들은 전염병에 대한 우려가 비과학적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식수 공급원 근처에 시신이 있을 경우 식수가 오염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 외엔 시신이 그 자체로 건강에 위협이 될 가능성은 거의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 데르나의 우물 등 식수는 이미 대홍수 당시 섞여 들어온 오물로 오염돼 있어 접근을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서부 트리폴리 통합정부(GNU)의 이브라힘 알 아라비 보건장관은 로이터에 "지하수가 시신과 죽은 동물, 쓰레기, 화학물질 등으로 오염돼있다"며 "우물에 접근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리비아는 서부의 GNU와, 데르나를 비롯한 리비아 동부를 장악한 군벌 세력 리비아국민군(LNA)으로 분열돼있다.

WHO 등은 매장을 하더라도 시신 간 경계를 표시하고 희생자의 시신을 문서화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로이터는 “데르나의 한 의사는 추후 유가족들에게 전달할 가능성에 대비해 시신을 매장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고 전했다.

"당국 도시 봉쇄, 전염병 위험 키워"

15일 북아프리카 국가 리비아 도시 데르나에서 생존자들이 구호 물품을 받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데르나=로이터 연합뉴스

15일 북아프리카 국가 리비아 도시 데르나에서 생존자들이 구호 물품을 받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데르나=로이터 연합뉴스

한편 리비아 당국이 수색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데르나를 봉쇄하면서 국제 구호단체들이 도시에 접근하기 어려워졌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14일 리비아 의료 당국은 실종자를 찾거나 유해를 수습하는 수색·구조팀의 진입만 허용하고, 생존자는 데르나에서 대피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AP는 “15일 현지에서 생존자가 대피하고 있다는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런 조치는 시신 대량 매장을 하고 있는 당국의 의도와 달리 되레 전염병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국제 단체들은 우려하고 있다. 도시 곳곳에 여전히 고여있는 물이 범람 과정에서 심각하게 오염돼있는 만큼 물 오염으로 인한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지만, 도시 봉쇄 탓에 의약품이나 깨끗한 식수가 원활하게 조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노엘 카튼 리비아 국경없는의사회 관계자는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 몇 시간 동안이나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AP에 호소했다. WHO 대변인도 “도시 곳곳에는 거의 모든 것에 의해 오염돼있을 물이 여전히 고여있다”며 “생존자들이 안전한 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현종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