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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라 지금은 중고등학생인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돌봄교실 혜택을 톡톡히 봤다. 퇴근이 빠른 아내가 사정이 생겨 대신 아이를 찾으러 학교에 갈 때는 식사 시간도 훌쩍 넘긴 늦저녁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돌봄전담사)에게 수고를 끼쳤다는 민망함과 감사함, 교실에 혼자 남아 심심한 과제를 풀면서 귀가를 기다렸을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 늦어진 퇴근에도 고단함을 내색하지 않는 선생님에게 아이를 넘겨받을 때마다 느꼈던 감정이, 지금도 흐릿하게나마 되살아나곤 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어떤 자리에서 "요즘은 정책을 추진하려면 지지 여론이 70~80%는 돼야 한다"며 조심스러워했다. 교육부 장관 첫 임기(2010~2013)였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 비해 두 번째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지금의 정책 여건이 훨씬 녹록지 않다는 토로였다. 하긴 국회 여소야대 구도, 교육 문제에 대한 높은 민감도 등 여러 제약 조건이 쉽게 떠오른다.
교육부의 신중 기조는 그러나 학교 돌봄 강화 정책에서는 예외다. 올해부터 초등돌봄교실의 돌봄 대상과 시간을 확대한 '늘봄학교'를 시범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이 장관은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시행할 시점을 내년 2학기로 1년 앞당기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여론의 확고한 지지를 자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자녀가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과외 활동을 하고 최장 오후 8시까지 돌봄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부모 입장에서 이보다 안심되고 경제적이기까지 한 방도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2004년 도입 이후 유명무실했던 초등돌봄교실제를 본격 시행한 때가 이명박 정부 시절인 만큼, 당시 교육수장이었던 이 장관이 애착을 가진 정책일 법도 하다.
문제는 다시 정책 추진 여건이다. 학부모 호응은 높지만, 또 다른 이해관계자인 교사들의 반대가 완강하다. 이 장관이 늘봄학교 조기 전면 시행을 선언한 당일부터 여러 교원단체가 성향을 막론하고 앞다퉈 비판에 나섰다. 한마디로 "왜 교육 전문가인 교사에게 보육을 맡기려 하느냐"(교사노조연맹)는 것. 돌봄 프로그램이 형식상 돌봄전담사, 방과후강사 등 외부 인력에 의해 운영된다지만, 이들의 채용 및 노무관리, 돌봄 학생 출결처리, 학부모 민원 대응과 같은 파생업무를 교사들이 떠맡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도 역력하다.
공교롭게도 교사들이 '교권 보호'의 기치 아래 대동단결하고 있는 상황이라 늘봄학교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을 뿐 교단의 본격 저항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늘봄학교 업무 전담교사를 두겠다는 정부 방침을 두고 "교사 본연의 업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교육부의 인식 수준에서 작금의 교권 추락이 왜 이렇게까지 심각해졌는지를 알 수 있다"(초등교사노조)는 날 선 반응이 나온 것처럼, 교사들이 늘봄학교 확대를 또 다른 교권 침해로 규정한다면 파장을 예단하기 어렵다.
돌이켜 보면 학교에 돌봄 역할이 부과된 일은, 교육 기관이라는 학교의 오랜 정체성을 뒤흔든 중대 사건이었다. 수요자(학부모)는 반길 일이었지만, 정책당국과 학교는 서비스 공급책을 세심히 설계하며 변화 방향을 관리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교육 담당자(교사)와 돌봄 담당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수요자에게는 '같은 공간에서 제공될 뿐 공급자가 다른 서비스'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했다. 교사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는 악성 민원 중 상당수는 '수업 교실'과 '돌봄 교실'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돌보미'에게 걸 만한 기대가 교사에게 부당하게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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