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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방폐물 특별법! 또 미룰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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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8 04:3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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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회의 인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과 규칙을 만들고 이를 통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중ㆍ저준위 방폐장이 경주에 들어서기까지 19년은 안면도, 굴업도 그리고 부안 사태로 이어진 갈등과 혼란의 점철이었다. 결국 주민투표제를 도입하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지역 지원 체계를 명확히 한 후에야 방폐장 사업은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원전 5대 강국’임을 내세우지만 유독 고준위 방폐장 문제에선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30년부터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가득 차 ‘국가 자산인 원전 운영을 멈춰야 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면서도 정작 문제 해결을 위해선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고급 아파트에 산다고 자랑하지만, 막힌 화장실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해 언제 집을 비워야 할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터무니없고 무책임한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수십 년째 논의만 반복하는 사이, 다른 원전 운영국들의 노력은 하나둘 성과를 내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고준위 방폐장을 짓고 있거나 곧 지을 예정이고, 스위스 프랑스 캐나다 독일 일본 등은 부지를 선정했거나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입법부가 원칙과 절차를 담은 법률을 조기에 제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도 지난 20년 동안 보수-진보 정부에 걸쳐 두 번의 공론화를 통해 고준위 방폐물 관리 정책을 수립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지난 제20대 국회에서 발의된 3건의 특별 법안은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이 몹시 우려스럽다.

다만, 이번엔 소관 상임위에서 10차에 걸친 논의를 통해 쟁점을 하나둘 해소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남은 쟁점은 ‘관리시설 확보 시점 명시’와 ‘부지 내 저장 시설 용량 제한’으로 좁혀졌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가볍지 않은 주제지만 그렇다고 오랜 시간 다듬어진 특별법안을 좌초시킬 순 없다. 원전 주변 주민도 법적 지원 근거가 모호한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을 더 이상 원치 않고 전용 관리시설로의 조속한 반출을 요구하고 있다. 원전 소재 5개 지자체가 특별법 신속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런 민의를 반영한 것이다.

내년 4월 총선까지 제21대 국회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또 공론(空論)에 그친다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은 채 역사의 시계만 되돌려 놓을 뿐이다. 이젠 정말 또 미룰 수는 없다.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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